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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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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universal seoulite Oct 23. 2023

Full Stop, Please

미국에서 운전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 뿐 아니라, 좌우가 반대인 일본인들이 이 넓은 대륙에서 운전을 어렵게 생각하고 선뜻 내켜하지 않는 것을 볼 때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안도할 지경이 된다.     


그래도 자동차 주행 시 미리 숙지해야 할 몇 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STOP’이라고 쓰여있는 빨간 표지판이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이 표지판이 보이면 무조건 완전 정차를 하고 행인이나 다른 차가 없는지 확인 후 주행을 계속해야 한다. 내가 미국에서 운전을 처음 하기 전에 참고했던 어느 한국 유튜버님은 정차 후 1, 2, 3 3초를 마음속으로 세고 난 다음에 주행하라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주시기도 했다. 만약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주행하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벌금이 꽤 세다고 한다.     

 

문제는 이 STOP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정차한 차량의 출발 순서가 있다는 것인데 먼저 온 차량을 먼저 보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차량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에서는 아주 어렵지 않은데 차량이 많은 교차로에서 이 표지판이 보이게 되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정지선에 서서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 순서대로 기억했다가 내 순서에 맞게 잘 출발을 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차량이 동시다발로 사방에서 출현하면 이게 어렵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에서 막 쏟아져 내려오는 블록을 빈칸에 맞게 잘 쌓아보려고 아무리 눈알을 굴리고 버튼을 열심히 두드려봐도 결국 제멋대로 높이 올라간 블록이 천장에 닿아버려 게임이 끝날 때 오는 바로 혼이 빠지는 그런 느낌이다.     


나만 어려운 건가? 내 머리가 나빠서 멀티가 안 되는 건가?  

    

처음 운전한 날은 한적한 골목길에서조차 이 단순한 원칙을 잊고 1, 2, 3만 세다가 출발을 먼저 하는 바람에 반대쪽 차량 운전자가 화를 내는 것을 보기도 했고, 큰 교차로에서는 순서를 제대로 기억 못 하는 바람에 우물쭈물 눈치를 보다가 뒤차가 독촉할 것 같아서 출발은 했는데 좌측 차선에서 손가락 욕을 날린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이 STOP 구역은 미국에서 엄청 민감한 성역의 구간임이 틀림없다. 대체로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운전을 얌전하게 하는 지역에서 이런 상황을 접할 때면 이곳이야말로 점잖은 사람조차도 전투력을 급상승하게 만드는 구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STOP 표지판만 보이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내가 이 STOP 표지판 앞에서 정차한 잠깐의 순간을 참지 못하고 부릉부릉 배기음을 연신 내뿜는 성질 급한 한국인 그 자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빨리 무엇인가를 해내야 할 것 같고 잠시라도 쉬는 게 불안한 마음이 계속 불쑥불쑥 올라오면서 내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잠깐의 회복 시간조차도 편하게 주지 못하는 오늘의 내가 마치 STOP 표지판 앞에서 불안한 내 모습 같았다. 잔뜩 긴장해서 치솟은 어깨로 가속 페달 위에 올려둔 내 발바닥에 온 신경을 기울인 채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F1 그랑프리에 나간 것도 아니고 애쉬튼 마튼을 탄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레이서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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