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킨셀라(Sophie Kinsella)의 '쇼퍼홀릭' 소설 시리즈에 한참 꽂혔던 적이 있었다. 제목대로 쇼핑에 중독된 직장인, 레베카 블룸우드가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소설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크게 흥행한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남주가 너무 '안' 매력적이다...
내가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한참 쇼핑하는 재미에 빠져있던 무렵에 읽었던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 내 월급은 통장을 스쳐간 흔적만 남기고 카드값으로 나가기 바빴고, 카드를 돌려가며 긁다 보면 한 달에 버는 것보다 더 쓰고 있는지도 모르게 소비를 할 때였다. 너무 창피하지만 돈이 부족해서 부모님께 연락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낌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쇼핑을 했다. 회사 스트레스를 풀려고, 힘들게 야근했으니 고생한 나를 위해서, 모처럼 보너스를 받았으니까, 입고 갈 옷이 없으니까, 품위유지를 위해서 명품 가방 하나쯤은 들어줘야 하니까,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보여야 하니까, 할인할 때 사면 돈을 아끼는 거니까, 상품권 행사를 하니까 등등 돈을 써야 하는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때는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쇼핑을 가고 싶던 날들이었다.
백화점, 아웃렛, 쇼핑몰, 재래시장, 안 가본 곳이 없었고, 결국 백화점 VIP 고객(그중 제일 아래 등급이지만 아마도 당시 내 능력으로 갈 수 있었던 제일 상단)으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고 단골손님이 누리는 프리미엄 혜택을 너무나도 사랑했었다.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출근하고 싶었고, 네일아트를 예쁘게 해서 손톱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단정한 모습을 원했고, 가방은 시즌마다 바꿔 들어야 했으며, 가끔은 호텔에서 근사하게 식사를 해야 했고, 휴가철에는 해외여행을 해야 했다.
그런 나의 씀씀이를 걱정하던 옆자리 선배는 은퇴 후 삶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저축도 하고 청약저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YOLO'를 외치며 미래를 위해서 행복을 미룰 수 없으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겠노라고 했다. 소비가 주는 행복이 너무 좋았다. 회사 일이 힘들어도 쇼핑으로 잊을 수 있었다. 더 많은 돈으로 더 큰 행복을 사고 싶었다. (사실 그 옆자리 선배는 은퇴를 앞둔 얼마 전 고인이 되셨다. 열심히 은퇴를 준비했던 모습이 선한데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하지만 이렇게 몇 년이 지나니 쇼핑이 주는 행복의 지속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한 철, 한 달 정도 행복이 지속되었다면 시간이 갈수록 행복의 유효기간은 급속히 짧아졌다. 소비가 주는 행복의 유효기간이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게 될 무렵, 불현듯 그동안 내가 껍데기만 치장하는데 바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명함에 박힌 내 이름 석자 외에 회사명, 직급은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회사는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으며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언제든 누군가가 대체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이대로 내가 회사를 나가게 되면 나는 그냥 흔한 아무개일 뿐이며 회사라는 안전장치 속에서 안락함을 누리는 동안 나라는 사람의 잠재된 가치와 능력은 퇴색되고 조직에 맞는 '지극히 적당한 인생'과 타협하며 살고 있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고, 나 하나쯤 없어도 회사는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으로 내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래 봤자 회사는 내 기분 따위는 알아야 할 필요조차 없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동안 회사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이 송두리째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두 내 탓이었다. 껍데기에만 신경을 쏟는 동안 정작 실력을 키우고 자산을 불리는 것에는 소홀했던 내 탓이었다. 희소성을 가진 나만의 능력, 넘치는 자산이 있었더라면 나는 뽀삐*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며 당당하게 명함을 찢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긁었던 종이 영수증들이 보란 듯 내 몸을 휘감아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게 나를 묶어버린 기분이었다.
(돈을 사랑하는 두 가지 다른 관점(2)에서 만나요)
*뽀삐 : 자칭 개미 중 상개미에서 파이어족이 된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괴롭혔던 상사를 뽀삐라고 지칭했다. 개라는 상징성은 유지하되 불쾌했던 관계를 유쾌하게 비틀어 표현한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