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녹아내려 소파에 들러붙은 채 반쯤 감기 눈으로 더위를 버터내고 있을 때였다.
한낮 여름의 뜨거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련하게 흩날려 코끝에 솔솔 와닿는 복숭아 향이 사랑스럽게 향기롭다. 아기 고양이가 솜방망이로 톡톡 건들듯 내 코끝을 기분 좋게 스친다.
에효, 애석하게도 아무리 애써 기교를 부려 묘사해 봐도 알량한 내 말재주로는 한여름 복숭아 향기를 도무지 근사하게 재현해 낼 수가 없다.
머리맡에 둔 복숭아 향이 은근하게 공기 중에 퍼져 내 코끝에 닿는 느낌이 좋아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어 질 때쯤 문득 생각해 본다. 세상에 나온 피치향은 많은데 실제 복숭아 과육이 뿜어내는 그 알듯 말 듯 적당히 달고 싱그러운 자연의 향을 닮은 그런 향은 왜 없을까. 복숭아향을 닮은 향수를 뿌린다면 더없이 순수하고 순둥 해질 것 같은데 아직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조제 복숭아향도 그저 달기만 한 것 같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복숭아의 청량한 향은 매우 도전적이다. 두고두고 아껴먹으려던 생각 따위는 집어던지고 황급히 일어나 잘 익은 복숭아를 집어 들고 깨끗이 잘 씻는다. 보들보들한 속살이 상할까 손끝에 힘을 최대한 빼고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긴다. 반듯하게 잘라 접시에 올려놓은 복숭아 조각이 뽀얗게 이쁘게도 반짝인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부지런히 복숭아나 더 먹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