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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석 Aug 14. 2024

빨리 가셔야 하는데…

어머니 요양원 가신 지 구 년째

자식 넷 고만고만하게 산다

월 십만 원씩 모아 요양비 충당한다

하반신 못 쓰는 치매환자 어머니

백 세를 넘기시려나

뭐든 잘 잡수신다

낼모레 칠십인 큰올케가

췌장암 수술을 했다 한다

미안한 생각이 울컥 든다

사남매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큰올케는 좀 괜찮나?

엄마가 빨리 가셔야 하는데…’


모두가 말이 없다

- 천지경, <빨리 가셔야 하는데>



고만고만하게 사는 사남매에게 월 십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자식 넷의 사정이 각각 다르기에 누군가에겐 겨우 감당해내는 금액일 수 있다. 구 년 동안 버텨온 그들에게 가슴을 짓누르는 바윗덩어리 하나가 보태진다. 내일모레 칠십인 큰올케가 췌장암에 걸린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울컥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단톡방에 글을 남긴다. “엄마가 빨리 가셔야 하는데…”



한 생명의 죽음으로 다른 생명들이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는 현실. 그저 먹먹하여 모두 말이 없는 것이다.



성한의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10년째 의식 없이 누워 있다. 간병 로봇 TRS는 7년째 환자를 돌보고 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꼬박꼬박 환자의 누운 자세를 바꿔주고 전신 마사지도 했다. 씻기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옷을 갈아입히고 자라난 머리를 다듬고 손발톱을 깎았다. 병실을 청소했고 의료기록을 확인했다.



40대 중반이 훌쩍 넘은 성한은 병실에서 TRS와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이라곤 의식이 없는 어머니뿐인 성한에게 TRS는 좋은 말벗이었다.



어느 날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보던 70대 여자가 옆 병실에서 자살했다.



할머니는 긴 세월 남편을 돌보느라 완전히 지쳐버렸다. 무릎이 아파 집에서 혼자 환자를 돌보기 어려워 요양병원에 들어왔다. 간병인을 구하는 것보다는 좀 더 싸다고 해서 정부 보조금을 보태 간병 로봇을 들였다. 그래도 빚을 내야 했다. 남편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달라고 하고 똥오줌도 가리지 못했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요양 등급을 변경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불어나는 병원비와 로봇 사용료가 할머니의 목을 조여왔다. 자식들과 연락이 끊긴 건 한참 전이었다.



로봇을 들인 뒤로는 남편이 병원을 나가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감옥에 가두고 로봇이라는 간수를 세워둔 것만 같아 할머니는 죄책감을 느꼈다. 같이 산책을 하는 것도 어쩌다 한 번이었다. 할머니는 무릎 통증이 심해져 다리를 절었고, 의사는 빨리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돈 때문에 수술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차라리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할머니의 마음에서 솟아올랐다.



할머니는 유리병에 든 약을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할머니가 죽어가는 동안 할아버지는 잠들어 있었고 간병 로봇은 할머니의 얼굴을 하고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간호사가 간병 로봇의 얼굴을 보호자의 얼굴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또 간호사가 별생각 없이 로봇의 돌봄 대상으로 할아버지만을 지정해 놓아서 로봇은 할아버지의 맥박, 호흡 등을 체크해왔을 뿐 할머니의 상태는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잠든 할아버지 옆의 보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뜨고 입이 일그러진 채였다. 빚 때문에 집까지 팔게 된 할머니는 자살할 장소로 다른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약을 먹자 남편과 함께 행복했던 기억도 사라져버렸다.



이 내용은 김혜진의 소설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를 요약하고 발췌한 것이다.



할머니가 자살한 이후, TRS의 눈에 비친 성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성한은 할머니와 이따금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던 사이였다.


“나도 그렇게 되겠지.”



TRS는 성한의 혼잣말을 들었다. 성한이 추가로 돈을 들여 고급 언어 기능까지 활성화시켜 놓고, 돌봄의 대상도 어머니와 자신 둘 다 등록해 놓은 덕에 TRS는 성한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TRS는 병실을 둘러보는 성한을 자세히 관찰했다. 동시에 주목할 만한 최근 데이터를 불러냈다. 옆 병실 할머니가 자살한 뒤로 성한의 우울증 지수가 높아졌다.


“갈게.”



성한은 문 앞에서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평소에는 TRS를 바라보며 “갔다 올게”라고 말했었다. TRS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돌아오시는 거죠?”



로봇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한은 병실을 나가버렸다. 며칠 동안 성한은 돌아오지 않았다. TRS가 이 병실을 지켜온 7년간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TRS는 성한에게 계속 연락했고 성한은 답이 없었다. 성한이 모든 기기를 꺼버렸는지 위치도 확인되지 않았다.



TRS는 생각했다. ‘생명 하나가 죽어야 생명 하나가 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TRS는 성한의 어머니한테 다가가서 주저하지 않고 산소 호흡기를 벗기고 기기들의 전원을 모두 껐다. 성한의 어머니에게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TRS는 연락을 받지 않는 성한에게 긴급 메시지를 남겼다.



해가 저물어 날은 어두워졌고 성한은 야산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성한은 땅에 버려진 개 목줄을 주워 들고 그림자처럼 검은 나무 앞에 멈춰 섰다. 굵은 나뭇가지에 개 목줄을 걸었다. 그리고 바위를 딛고 올라서서 줄에 목을 걸었다. 그때 손목에서 긴급 알람이 울리며 빨간 불빛이 켜졌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웹툰 《도무지 그 애는》의 주인공 도무지는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산다. 알바로 가족의 생계를 간신히 지탱해 나가는 대학생 무지에겐 할머니의 병원비를 감당하는 일이 너무나 버겁다. 할머니는 무지가 병원에 들를 때마다 “내가 이렇게 자꾸 아파서 어떡하냐. 너만 고생시키고…”라며 미안해한다. 그리곤 “내가 얼른 가야 되는데…”라는 말을 항상 덧붙인다.



무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그때 일을 가끔 회상한다. ‘아직도 속이 쓰리다. 더 오래 사시란 말을 못 해드렸던 게. 그 말만은 늘 목에 걸려서 차마 할 수 없었다.’



무지의 고백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돌아가셨을 땐 너무 슬펐다. 이 고생이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것이라니.’



무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집으로 모셔온 유골함 앞에서 절하며 흐느껴 울었다.



“할머니. 미안해. 후련해해서 미안해. 거기서는 꼭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 알았지?”(게코․시노키오, (《도무지 그 애는》)



도무지는 그때 알았다. 삶이 죽음보다 무겁다는 게 어떤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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