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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석 Aug 12. 2024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길을 만든 사람들 2

시사저널 기자로 일했던 성우제는 2001년 뉴욕 출장길에 캐나다 토론토에 들른 적이 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시간에 시내버스를 탔다.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 기사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함께 내렸다. 두 사람은 같이 길을 건너갔다. 버스 기사는 그 승객이 혼자 안전하게 길을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 안내했다. 그런데 바쁜 출근 시간에 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 버스가 몇 분 동안이나 멈춰 서 있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눈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로 보이는 일을 캐나다 사람들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캐나다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약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오랜 세월에 걸쳐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학교에서 미래의 사회인인 학생들에게 꾸준히 교육한 덕분일 것이다.



최일도 목사는 1989년 7월부터 몇몇 사람들과 함께 서울 청량리 굴다리에서 등산용 버너와 코펠을 들고 행려자와 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무의탁 노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다일 교회와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1989년 9월 3일, 드디어 다일교회와 다일공동체는 인쇄소 사무실을 개조한 예배당에서 창립예배를 올렸다.



다일공동체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파도 어디 가서 치료 한번 못 받는 이들을 섬기고 돌보기 위하여 다일천사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무료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은 1993년 11월에 청량리 뒷골목의 직업여성들과 주민들이 모아준 47만 5,000원과 다일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은 1,100만 원으로 시작되었다. 그걸 기반 삼아 한 사람당 100만 원씩 1,000명을 모아 병원을 세워보자는 천사운동을 벌였는데 6,000명 이상이 동참했다. 그리고 병원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한 사람이 매달 만 원씩 후원하여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살려보자는 만사운동을 벌여나갔다. 그 결과 2002년 2월 2일에 건물을 완공하고 2002년 10월 4일에 개원하였다.



밥퍼 나눔운동 식사는 2006년 5월 300만 그릇을 넘었고, 2011년 5월 2일 500만 그릇을 돌파했다. 점심 한 끼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1,000명 정도인데 1,200명분을 준비해도 남는 적이 없다. 한 사람이 보통 두세 명분씩 먹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 생선을 도매하거나 시장에서 청과물을 파는 상인들이 바로 팔아도 되는 싱싱한 음식들을 가져다주었고 무나 배추 등 반찬 재료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2011년까지 다녀간 자원봉사자는 20여 만 명인데, 이들은 밥 퍼주는 일만 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앞치마를 다렸고 택시기사는 남은 음식들을 다른 복지단체에 운반했고 미용사는 머리를 다듬어주었다. 신혼여행을 가는 대신 봉사활동을 했던 교사 부부는 자녀 세 명의 생일 때도 찾아왔다.



최일도 목사는 “봉사자의 80퍼센트 이상이 다른 종교를 갖고 있거나 종교가 없는 분들”이라며 “기독교 목사가 시작한 일에 종교가 다르거나 없는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일공동체의 밥퍼 활동이 특별히 감동을 주는 이유는 종교가 다르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참여하기 때문이다.



건물 미화를 담당하는 아주머니들은 여사님, 건물 경비를 담당하는 아저씨들은 선생님이라 부르는 회사가 있다. 청소, 경비, 조경, 시설물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종합서비스 업체인 삼구아이앤씨이다. 여사님,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를 잘 드러내준다. 구자관 대표는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집에 돌아가면 집안의 가장이며 부모이기에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삼구아이앤씨는 해마다 ‘우수 현장사원’을 선정해 호텔에서 부부동반으로 저녁 먹는 행사를 벌인다. 경영본부에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행사 장소를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바꾸자고 제안해도 구자관 대표는 늘 거부한다. 평생 호텔·백화점에서 일한 사람들인데, 최고사원으로 뽑히면 한 번쯤 최고급 호텔에서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삼구아이앤씨는 구성원을 존중하기 위해 원청업체를 바꾸기도 한다. 청소를 맡은 미화노동자를 배려하는 기업이나 건물은 많지 않다. 그들의 쉼터는 대개 지하 주차장에 베니어합판으로 칸막이를 세우고 스티로폼으로 바닥을 깐 곳이나 보일러실이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건물도 있다. 삼구아이앤씨는 원청업체가 이런 여건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계약하지 않는다. 그래서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미화원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은 사회적 약자를 좀 더 배려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이 저절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서 물살을 이루어 힘차게 흘러가는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쌓여서 마침내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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