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학문을 중요하게 여겼던 세종은 1420년에 학문 연구기관인 집현전을 궁궐 안에 세웠다. 집현전 학자들에게 “독서하고 공부하자. 조상을 위해, 부모를 위해, 후손을 위해!”라고 당부했던 세종. 15세기 조상으로 21세기 후손들보다 더 시대를 앞서간 세종은 겨레의 큰 스승이다. 스승의 날을 5월 15일로 정한 이유는 그날이 바로 우리 민족에게 스승 중의 스승인 세종대왕이 탄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이 1년씩 직무를 떠나 독서와 학문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사가독서제를 실시했다. 사가독서제는 자기 집이나 절 같은 데서 업무를 잊고 오로지 공부에만 마음 쓰도록 하는 휴가제이다. 1426년 12월 11일 세종은 권채, 남수문, 신석견 등을 불러 이렇게 명했다.
“내가 너희들을 집현관원으로 제수한 것은 나이가 적어 장래가 있으므로 책을 읽혀서 실제 효과가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각자의 직무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독서에 전념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부터는 집현전에 출근하지 말고 오직 공부에만 마음 써서 성과를 나타내어라.”
광주광역시 광산구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2012년 4월부터 재직 기간이 10년 이상인 직원에게 10년마다 20일간의 휴가를 주는 안식휴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사가독서제는 현재의 안식휴가제에 해당한다. 세종은 15세기에 일부 공직자들이 재충전하고 자기계발할 수 있도록 휴가를 주었다. 후손들보다 무려 586년이나 앞선 시기에 공직사회의 유연성과 창조성을 높이기 위해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노르웨이는 출산휴가 기간이 총 13개월인데 휴가 기간에 급여의 80퍼센트를 받을 수 있다. 10개월만 쉴 경우에는 급여의 100퍼센트를 받는다. 또한 남편도 산모와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 12주의 휴가를 반드시 써야 한다. 스웨덴은 아이를 한 명 낳을 때마다 1년 4개월의 출산휴가를 쓸 수 있고, 그중 급여의 75퍼센트를 받는 기간이 1년 1개월이다. 그리고 남편도 60일은 의무적으로 휴가를 써야 한다. 덴마크의 법정 유급 출산휴가는 1년이다. 산전 1개월, 산후 6개월은 회사에서 기존과 동일한 급여를 주고 나머지 5개월은 정부에서 기존 급여의 80~90퍼센트 정도를 지급한다. 여성의 권리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스위스도 16주 동안 급여의 100퍼센트를 주게 되어 있고, 적어도 8주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이것을 어기면 사용자가 처벌받는다.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에서 “사용자는 임신한 여성에게 90일 간 산전, 산후 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출산휴가 제도가 있어도 회사의 눈치와 압력 때문에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426년 4월 17일 세종은 관청의 여자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100일 동안 휴가를 주도록 하고, 이를 규정으로 삼으라며 형조에 지시했다. 넓고 깊은 안목으로 노비의 출산휴가까지 신경쓴 것이다. 이때 세종의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1430년 세종은 산전 휴가 30일을 추가하는 조치를 내린다.
“옛적에 관가의 노비가 아이를 낳을 때에는 출산하고 나서 7일 이후에 복무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이를 버려두고 복무하면 어린아이가 해롭게 될까봐 염려한 것이다. 일찍이 100일간의 휴가를 더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임신부가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하다가 몸이 지치면 집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 만일 산달이 가까워오면 1개월간 복무를 면제해 주면 어떻겠는가?”
- 《세종실록》 12년 10월 19일
또한 산모만이 아니라 산모 남편의 출산휴가제도 시행한다.
“산모에게만 휴가를 주고 남편에게는 전혀 휴가를 주지 않으니 산모를 돌볼 수 없게 된다. 이는 부부가 서로 도우라는 뜻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간혹 목숨을 잃기도 하니 진실로 가여운 일이다. 이제부터 노비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이 30일 뒤에 근무하게 하라.”
- 《세종실록》 16년 4월 26일
즉 세종시대에는 관노비의 출산휴가가 산전 30일 산후 100일로 법제화되었으며, 산모의 남편에게도 1개월간 휴직이 허용되었다. 관노비의 산전, 산후 휴가제도만 놓고 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산휴제도보다 훨씬 앞서 있다. 임신부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정책을 21세기의 유럽이 아니라 15세기의 조선에서 먼저 실시한 것이다.
이렇듯 세종은 일부 면에서 600년 뒤의 후손들보다 더 선진적인 인권의식과 복지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세종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라는 말을 가장 자주 했다. 세종은 백성들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