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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석 Aug 16. 2024

수영 시간도 근무 시간인 회사

‘저녁이 있는 삶’



이렇게 간결한 말로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도록 매료시키는 슬로건은 좀처럼 없을 듯하다. 이 슬로건은 2012년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면서 내걸어 두루 화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2012년 7월 16일 경향신문의 한윤정 문화부 차장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쉽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간의 귀소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공적 영역에서 힘겹게 일하더라도 저녁에는 느슨하고 선한 마음을 품은 채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낮에는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저녁에는 느긋하게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귀소본능에 부합하는 근무 제도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은 헨리 포드이다.



헨리 포드는 1926년 9월 최초로 주 5일(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 제도를 도입했다. 포드자동차회사는 2014년부터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 일당 1달러가 기본이었던 보통 회사들과 달리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일당 5달러를 지급해오고 있었다. 헨리 포드는 거기에 더해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 주 5일 근무제라는 파격으로 세상의 혁신을 선도한 것이다.



주요 국가에서 주 5일 근무 제도를 시행한 시기는 프랑스 1936년, 미국 1938년, 노르웨이 1977년, 스웨덴 1982년, 일본 1988년, 핀란드 1996년, 중국 1997년 등이다.



2003년 8월 29일 대한민국 국회는 주 5일 근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2004년 7월부터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하는 주 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근로기준법에서 사용자는 1일 근로시간이 8시간인 경우에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으로 활용하는 휴게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직장에 머무는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1일 9시간 주 45시간을 일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곳이 세 군데 있다. 일터와 쉼터, 그리고 놀이터이다. 누군가는 아침에 출근할 때 내 발걸음이 가벼운지, 회사로 향하는 내 마음이 즐거운지가 일터에서 행복한지 가늠하는 척도라 했다.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로슈 덴마크는 2012년 덴마크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되었다. 이 회사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저녁 도시락을 준비한다. 그 덕분에 퇴근한 직원들이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세탁할 것을 회사로 가져오면 퇴근할 때 찾아갈 수 있게 해준다. 우체국에 갈 일이 있어도 회사에서 대신해준다. 성가신 일을 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배려해주기 위해서란다.



출근할 때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로슈 덴마크의 직원들이 가끔 부러워할 만한 회사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제니퍼소프트의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 퇴근 시간은 오후 6시다. 회사가 처음 생겼을 때는 점심시간을 포함한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점심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이원영 대표가 근무 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바꾸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1일 근무 시간은 7시간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 시간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일주일에 35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일반 회사에서 적용하는 근무 시간과 다르다. 혼자 나가 사색하거나 별 생각 없이 쉬는 것도 근무에 포함된다. 수영을 배우거나 즐기는 시간도 근무 시간에 해당한다. 직원들은 일하다가 머리가 답답해지면 지하 수영장으로 내려가 수영한다. 오후 2시, 3시, 4시에 강사한테 무료로 수영을 배울 수 있다. 그 밖의 시간에 자유롭게 수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월요일 출근을 걱정하는 월요병이 없다.



제니퍼소프트는 근무 시간은 줄이고 휴가 일수는 늘려왔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연차 휴가가 20일이고, 2년마다 하루씩 늘어난다. 휴가 일수가 모자라면 무급휴가로 최대 8주 동안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5년 일하면 2주간, 10년 일하면 2개월간 안식휴가를 쓸 수 있다. 이때 회사에서 가족 해외여행을 보내준다. 휴가를 쓰기 위해 결재 받는 절차는 없다. 특별한 사유도 필요 없다. 그냥 모든 직원에게 ‘휴가 내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이원영 대표가 제일 기분 좋았던 순간 중의 하나는 날씨가 좋아서 휴가 내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였다고 한다.



제니퍼소프트는 다양한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연간 복지비로 300만 원을 준다. 또한 직원들이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퇴근해서 귀가하는 시간까지 드는 비용을 모두 회사에서 지원한다. 차량 유류비를 비롯한 교통비, 통신비, 식비, 간식비, 도서 구입비 등 조금이라도 업무와 관련된 비용은 전액 지급해 준다. 자녀 출산 축하금으로 아이 한 명당 1,000만 원을 지급하고, 육아휴직을 해도 눈치 주지 않는다. 여성 육아휴직은 최대 2년이고, 산전․산후 휴가는 3개월이다. 1층 카페와 레스토랑의 모든 메뉴도 가족에게 주중과 주말 언제나 무료로 제공한다. 회사에서 꼭 지켜야 할 사항 가운데 집에서 아이들이 전화하면 “회의 중이니까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말하지 않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원영 대표는 직원들에게 복지를 베풀어주면 생산성 향상으로 보답해줄 것이라는 논리를 거부한다. 한 사람이 삶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기본사항이 복지인데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직원들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대신 자발적 기여에 기초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으로 이어졌다.



이원영 제니퍼소프트 대표는 2012년 12월에 시사저널 기자와 인터뷰할 때 이렇게 강조했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시간을 대부분 사용한다. 근로시간이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이 모두 무너지고 있다. 삶과 일의 균형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엄민우, <‘월요병’ 없는 직장인 천국 ‘제니퍼소프트’>)



삶과 일의 균형이 중요한 시대에 이원영 대표는 길이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회사는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구성원은 스스로 자기 역량을 끌어올려서 창의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제니퍼소프트는 직원이 새로 들어오면 할 일을 스스로 찾을 때까지 자기계발하는 시간을 준다. 1년 동안 어떤 업무도 정해주지 않고 책 읽는 시간을 갖게 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강연을 마음껏 듣도록 한다. 이 기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게 하는 것이다.



이원영 대표는 “이러다 망하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는 한결같이 대답했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잘될 겁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성장하도록 잘 도우면 회사에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원영 대표가 2005년 설립한 제니퍼소프트는 애플리케이션의 성능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회사이다. 2007~2008년 무렵부터 국내에서 외국산 제품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21년 영업이익이 50억 원 이상으로 매출 대비 50%가 넘는다. 2021년 12월말 현재 국내외 고객사는 1,500여 곳에 이른다. 이중 국내 고객이 1,170여 곳, 해외 고객이 350여 곳이다. 일본 최대의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라쿠텐, 싱가포르에 있는 대형 금융회사 등이 제니퍼소프트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구성원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희망을 보장해주는 길을 새롭게 만든 회사가 이런 성과를 거두었기에 더욱 놀랍고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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