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는 울적하거나 어두워진 마음을 감싸주고 다독여준다.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은 활력을 더해주고 기운을 복돋아준다.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을 때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은 다시 먼길 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보태준다. 그런 벗처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하버드대학 성인발달 연구팀은 1938년부터 미국인 724명(하버드대 재학생 268명, 빈민가 청년 456명)의 삶을 추적했다. 하버드대학 2학년 학생 268명을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건강하고 사회에 잘 적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으로 선발된 젊은이 가운데 절반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충당해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형편이었다. 일부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도심 빈민 지역에 사는 소년 456명을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하버드 대학생들을 선택한 이유와 사뭇 달랐다. 그들은 보스턴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가정과 가장 불우한 동네에서 자랐지만 또래들 가운데 일부가 밟는 비행 청소년의 경로를 열네 살 때까지 피하는 데 성공한 아이들이었다.
연구는 참가자의 적성, 건강, 결혼과 가정생활, 사회적 성취, 친구관계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연구팀은 2년마다 설문조사를 하고, 5년 단위로 신체 건강을 측정했다. 5∼10년마다 심층면접도 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뇌 인지능력 검사, 유전자 연구도 병행했다. 지금은 최초 참가자 724명의 후손까지 포함해 1,300명 넘는 인원이 참여해 3세대에 걸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네 번째 연구 책임자인 로버트 월딩거 교수는 2023년 동아일보 특파원과 인터뷰할 때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은 부와 성공, 명예, 혹은 열심히 노력하는 데 있지 않았다. 85년간 연구해서 얻은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바로 ‘좋은 관계’가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조사를 시작할 때 대상자들이 정한 삶의 목표는 대부분 부와 명예였다. 하지만 이들이 50세 이후에 이르렀을 때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의 조건으로 ‘인간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인간관계는 몸과 마음 모두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경우 더 건강하고 만족도 높은 삶을 산다.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 친구들, 직장 동료 등 의지할 수 있는 어떤 관계든 의미가 있다. 또 관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소셜미디어도 이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된다면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김현수, <“한국인, 서울대 꿈꾼다지만… 하버드는 행복과 관련 없었다”>)
2002년부터 연구를 이끌고 있는 월딩거 교수는 행복을 위해 살 곳이 있고, 먹을 것이 있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버드 대학생들과 빈민가 청년들의 삶을 85년 동안 살펴본 결과 “50대일 때 인간관계에서 만족도가 높았던 사람들이 80대에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온전한 삶을 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할 경우, 인간관계가 건강과 행복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따뜻한 관계는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