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편지
* 4년 차 조울증 당사자로, 2형 양극성 정동 장애를 진단받았습니다.
현재는 입원 없이 약물 치료하고 있으며, 철저한 관리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처음 정신과에 가기로 마음먹는 일은 단순한 결심이 아닙니다. "기껏 병원 가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그 지점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해 갑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머릿속이 수많은 질문들로 가득할 겁니다.
"정신과는 진짜 이상한 사람만 가는 거 아니야?"
"그냥 의지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약한 거겠지.."
"약 먹으면 나중에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거 아냐?"
정신과는 베일에 싸인 존재 같습니다. 유독 숨겨진 비밀과 오해가 많습니다. 그것이 정신과 방문을 막는 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정신과를 처음 찾으려는 누군가에게, 혹은 한때의 저처럼 망설이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정신과 기록은 '해당 병원 내부 차트'와 '건강보험공단'에만 남습니다
* 출처: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칼럼 참고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정신과 진료받으면 기록 남잖아요. 그거 회사에서 볼 수 있지 않아요?”
“혹시 가족이 알게 되면 어쩌죠?”
'정신과'라는 낙인은 만연합니다. 사회 분위기 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의 진료기록은 안전합니다. 심지어 가족이라도 여러분의 동의 없이는 그 내용을 볼 수 없습니다. 회사도 친구도, 아무도 동의 없이 여러분의 진료 내용을 열람할 수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이라도 자유롭지만은 않습니다.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떼어가려면,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합니다. 이는 병원이 아닌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열람이 가능하며, 온라인으로 열람이 어렵습니다. 신분증을 지참해 직접 방문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신과 기록이 유출되거나, 진료 기록이 남는다는 이유로 치료를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2. 정신과는 꾸준히 다녀야 하니, 첫 병원이 중요합니다.
정신과는 보통 한 번 가고 끝나지 않습니다. 특히 정신 질환은 만성 질환이 많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첫 병원 선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의사 선생님과의 호흡, 진료 방식, 상담 분위기, 약 처방 경향 등 모두 여러분의 회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최대한 여러 곳에서 상담받으며 비교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말을 얼마나 잘 들어주는지"
"약에 대해 충분히 잘 설명해 주는지"
"진료실에서 내가 안전하다고 느껴지는지"
이런 기준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내 마음을 함께 들여다봐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신과 예약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요즘 정신과 수요가 너무 많아서, 예약이 2~3주 뒤로 잡히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니 망설이고 있다면, 지금 바로 병원 몇 군데부터 검색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나중에 취소해도 되니까요. 특히 '이 정도로 병원을 가야 하나?'라고 고민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고, 조금 힘들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가볼 수 있는 곳입니다.
3. 여러분의 증상을 적어보세요
치료의 시작은 자기 이해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검사 하나, 말 하나가 치료 방향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처음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이런 걸 묻습니다.
"언제부터 힘들었어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일반 내과와 달리, 정신과는 말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심연 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무섭고, 도통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과 가기 전, 미리 정리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는 어릴 때 어떤 아이였는지"
"언제부터 감정 기복이 생겼는지"
"특정한 사건이 있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증상을 심해지는지"
"요즘 반복되는 생각이나 감정은 뭔지"
"수면, 식사, 에너지 수준은 어떤지"
이런 걸 한 번 써보면, 놀랍게도 '내가 내 감정을 이렇게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정리는 병원 진료 때 큰 도움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약을 복용하고 나서 증상이 나아졌는지를 비교할 때도 자료가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목소리를 스스로 정리해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의 시작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 당신의 4년 뒤에서, 따뜻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