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너무나 입체적인 그녀
면접을 매니저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 매장의 책임자가 누군지는 모르는 채로 첫 출근을 준비했다. 책임자를 알 수 없다니, 한 마디로 앞으로 일하게 될 곳이 어떤 분위기일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로 무작정 일하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매니저의 첫인상이 좋았다고 해서 일할 때도 좋은 동료일 거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매장을 통솔하는 사람을 아는 게 확실히 유리하다.
이전에 면접을 보러 간 다른 지점 서브웨이에서는 매니저 혹은 사장을 만날 수 있었고, 원래 이게 당연한 절차지만, 어떤 동료가 될지 감히 추측할 수 있었다. 한 곳은 밥 먹는 알바생에게 밥을 빨리 먹으라 언질을 줬고 다른 한 곳은 면접을 기다리는 내가 보는 앞에서 알바생을 꾸중했다. 이 말은 즉슨,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밥 먹으며 눈치 봐야 하는 알바생이, 다른 동료나 손님이 보는 앞에서 타박당하는 알바생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면접 때의 분위기도 당연히 한 몫하는데, 면접의 분위기는 온전히 인터뷰어에게 달려있다. 인터뷰이가 밝고 똑 부러지게 대답을 한다고 한들 인터뷰어가 상대에게 배려와 친절을 베풀 생각이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같은 시기에 다른 매거진 동아리를 지원했을 때였다. 면접은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인터뷰어로는 2-3명이 들어왔는데 먼저 본 면접은 엄중하고 딱딱한 분위기로 진행됐다면 그다음에 본 면접은 매우 편안한 분위기 아래 진행됐다. 이 차이는 오직 '상대를 얼마큼 배려하고 싶은가'에 달려있지 않나. 인터뷰이의 긴장을 풀어주고 정말 당신을 편안하게 알아가고 싶다는 분위기를 주는 상사가 있는 곳과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으로 인터뷰이를 더 긴장케 하는 상사가 있는 곳 중 어디서 일하고 싶을지, 만일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당연히 전자의 구조에 들어가서 나 또한 새로운 이를 맞이하는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그 자세를 배워 다음 면접의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위 두 곳은 그들이 나를 뽑고 싶어 하는 지와는 별개로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 제한돼 있더라도 피드백을 받아야 하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첫 출근 후 만난 매니저는 감사하게도 알바생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출근 후 야채를 손질하는 나에게 메뉴에 들어가는 재료를 맞춰보라며 대뜸 퀴즈를 내는, 한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상사임은 분명했으나,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기회를 주는 상사인 것 또한 분명했다.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신입에게 당신은 수습기간에 있는 교육생이고 아무도 빠르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천천히 해도 된다라고 말해주며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는 사람.
배달 주문을 싸다가 빵을 바꿔서 싸는 바람에 잘못 만든 샌드위치가 남게 된 적이 있다. 이때도 매니저는 실수를 넘어가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이 커버쳐 줄 수 있는 한에서는 실수해도 된다며 알바생을 감싸주었다. 실은 이건 그저 자신을 기다려주는 한 알바생의 생각에 불과하지만, 매니저가 실수에 민감한 건 잘못 배달된 샌드위치를 알바생 본인이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든 사장 때문인 듯싶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런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알바생을 대했다.
매니저의 천천히 해도 된다 서두르지 마라 라는 말은 “배우면 누구든 못 할 게 없다”라는 본인의 신념이 반영된 말이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매장에는 30대를 넘어 40대도 교육을 받으러 온 적이 있었고, 사회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주부라도 일은 배우면 되니 문제 될 게 없다 열심히 하려는 태도만 가지고 있다면이라는 신념아래 알바생의 속도를 문제 삼아 타박한 적은 없었다. 대신 출근 시간이 늦다거나 근무 태도가 좋지 못하면 넘어가지 않았지만.
매니저가 나에게 한 말 중 가장 인상 깊은 말을 꼽으라면, 알바 시작 후 일주일도 안 돼서 들은 말이지만 아직도 그 상황이 생생한 그날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샌드위치를 다 싸고 계산하던 중 30cm 같은 메뉴를 싸더라도 야채 치즈 등 그 내용물이 달라지면 15cm 두 개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30cm 한 개로 결제했다가 재결제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15cm 두 개로 결제하면 30cm 한 개보다 비싸기 때문에 만일 한쪽에만 야채를 뺐다면 돈을 더 내야 하는 상황. 손님은 미리 안내받지 못했고 야채를 뺐는데 왜 돈을 더 내야 하냐며 언성을 높였는데 그 상황에서 나는 그저 죄송하다고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고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이없음을 감추지 못하는 손님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조아렸을 때 매니저는 알 수 없는 숨을 깊게 내뱉었고, 상황 정리 후 주방에 들어가 한마디 했다.
일하다 보면 손님에게 굽신대는 알바생이 종종 있다. 그런데 그렇게 굽신대지 마라. 너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숙여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 너의 노동을 낮추지 마라.
그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컴플레인을 받아본 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사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명료히 정리해 준 상사가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매니저는 친절함 속에서도 단호함을 잃지 않았고 동료에게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에게 이유 없는 사과는 하지 않았다.
빠른 적응력과 성실함으로 매니저의 마음에 쏙 들었던 나는 줄곧 그런 매니저의 마음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새로운 알바생이 들어왔을 때 깨달았다. 친절함 없이 단호함만 있을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게 정말 필요한 단호함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