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으로 결정한거지만 뭐, 그 선택은 내가 책임져야지
누구나 내 주변 사람들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에 갇힌 듯한 직장동료 1이 사실 서핑에 죽고 못살기에 모르는 유명 스팟이 없다든지, 워라밸이 제일 중요해 보이는 후배 1이 갑자기 퇴사를 하고 자기 사업을 차린다든지 하는, 그런 모습들입니다. 무관심함 속에 스쳐지나가 알 수 없었던 개개인들의 또 다른 모습을 알고 싶어 인터뷰를 시작한 우리에게 그는 자연스럽게 떠오른 첫번째 인터뷰 주인공 이었습니다.
문헌 정보학과, 신학교, 엔지니어, 그리고 사진, 어찌보면 전혀 연관 없는 해시태그가 그에게는 삶의 궤적이 되었습니다. 첫 인터뷰라 어설픈 우리임에도 그는 진지하고 담백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름과 얼굴은 밝힐 수 없지만 그만큼 솔직하게 풀어놓은 삶의 한 조각을 공유합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81년생 입니다. 일반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로 입학은 했는데 졸업은 안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갑자기 신부가 되고 싶어서, 신학교를 들어갔어요. 근데 학부만 졸업하고 또 나왔어요. 그래서 두 번째 학교를 나왔을 때 이미 서른이 넘었어요. 십년 넘게 고졸이다가 드디어 31살에 졸업을 한거죠. 신학교를 나와서는, IT쪽 일을 하고 있어요, 개발자는 아니고 서버를 납품하고 깔아 주고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문헌정보과, 신학교 출신이신데 지금 엔지니어를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먹고 살게 없어서요. 노력해야죠. 신부가 되었으면 먹고 살 걱정은 안했겠죠. 그렇지 않으니까 지금은 먹고 살기 힘들죠.
갑자기 신부님 그리고 IT 이렇게 커리어를 계속 바꿀 때 마다, 결정 하게 된 요인들이 있으신가요?
충동. 신학대학교 갈때는 충동이 었어요. 2주 정도 고민하다가 (제 기준에선 되게 많이 고민한거에요) 결정했어요. 그때 당시에 긴가 민가 했는데 그냥 가봐야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모르니까.
일과 달리 남형이 꾸준히 해온것은요?
음악이요. 진짜 어렸을때부터 한건 아니고 중3때부터, 20년 했어요. 취미생활로 한 거라서 그냥 즐겼어요. 근데 그 걸 가지고 오래 했다고 말할 수 는 없을 것 같아요. 진짜 프로처럼 이십년 한건 아니니까요. 오래한 게 많진 않아요.
음악 외에 사진을 많이 찍으시는 것 같아요.
사진을 스무살때 부터 가볍게 찍다가, 지식도 없이. 4년전 가게 된 몽골여행 계기로 다시 찍게 되었어요. 재미있더라구요. 음악도 오래 하긴 했지만, 음악은 결과물을 보려면 오래 걸리고, 사실 직장인 입장에서는 따라 치는것 만으로도 오래 걸리거든요. 사진은 결과물이 빨리 나오고, 안 이쁘고 망한 사진도 그자체로 추억이 되더라구요.
특히 별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신학생 때, 평창에서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성당 수련회 프로그램 진행을 2달 동안 했어요. 아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별자리를 계속 볼 수 있었어요. 별, 달은 어렸을때부터 좋아했어요. 고양이는 그냥 좋아하는 거고!
별, 사진, 신학생, 엔지니어 같은 개성강한 이력들 때문인지, 주변사람들이 특이하다고 보는 것 같아요
미혼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걸 특이하다고 보나봐요. 사람들이 보통 결혼 안하는 거 까진 이해하지만, 연애도 안하니까 특이하게 보는 것 같아요.
연애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은것 같아요. 연애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것은 무엇이 있으신가요?
요즘은 연애 말고도 할게 많죠. 삶의 목표가 세계일주에요. 근데 (결혼하게 되면) 처자식을 두고 가기는 그렇잖아요. 나는 노숙하고 불편하게 지내도 되는데 애들은 그렇게 하면 안되잖아요.
오, 여행이였군요! 세워놓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마음만 있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가면 은퇴하고 가야지. 65세 쯤, 여행다니다가 죽을 것 같아요. 어느 나라에서 묻히는 지, 죽을지는 관심 없어요. 시베리아 같은데만 아니였음 좋겠어요. (그리고 나이 먹으면 무릎시려.)
현실적으로 계획은 없지만, 진짜 가고싶은 나라는 아프리카. 별 보러 가고 싶어요.
왜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셨어요?
글쎄요, 컴플렉스도 있는 것 같아요.
27세에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봤어요. 그것도 신학대에서 보내줬어요. 봉사활동겸 영어 연습 겸 해서 필리핀으로 한 달 정도 다녀왔어요. 갔던 곳이 젊은 필리핀 친구들이 와서 자격증을 따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나랑 10살 차이나는 새로운 친구들이 1~2주마다 들어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완전 젊은 꼰대 였죠. 그런데 거기서 특이한 친구들 많이 만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일단 안되는 영어로 얘기를 하니까 언어가 되게 평등해지더라구요. 그리고 자유로운 것에 충격도 많이 받고. 게이친구들도 처음 봤어요. 어쨌던 충격도 많이 받아서, 그때부터 외국에 나가는 것을 갈망했어요. 근데 생각보다 잘 나가진 못했어요.
세계 여행이라는 목표를 가질 만큼 여행의 묘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공항에서 내리자 마자 좋아요. 그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느낌 자체가 좋아요. 그래서 일본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냥 거리를 많이 걷는 하드코어 여행을 하게 되는것 같아요. 15~20키로를 걸어요. 가방 20키로 메고. 그러다 이쁜거 있으면 사진찍고. 갔다 온 곳 중에서는 몽골이 제일 좋았어요. 문명에서 떨어진 느낌 때문에요.
커리어를 바꾼 사람들에게, 다음단계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이나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없어요. 왜냐면 저도 안가본 길이니까. 내 조언을 통해서 너무 많은 영향을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책임도 못 지니까요.
정석대로 갔으면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결혼했을수도 있겠죠. 근데 후회는 없어요. 어차피 제가 고른거고, 제가 책임져야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최근 고민?
돈. 먹고 살것에 대한. 내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을것에 대한 고민. 앞에 4자가 붙으니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