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킬레스건

한 번도 굶어본 적 없는 자의 절망

by 쩨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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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굶어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용돈은 ‘정해진 액수’가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주어지는 것’이었다. 갖고 싶은 걸 못 가져서 속상했던 기억도, 친구들 사이에서 위축되었던 기억도 없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생산직으로 일하셨다. 학력이 높진 않았지만,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부모님은 용돈을 정해주기 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돈을 주셨다.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느낀적은 없다. 포스코 사원 단지에 살아서 주변 사람들의 경제 수준도 비슷했다. 부모님은 아들에게 인색하지 않으셨다. 나는 용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이 주셨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 무언가를 갖지 모해 위축되거나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


어느새 나는 40대가 되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완전하게 독립되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현재의 수입으로는 나 혼자 살아가는 데 있어 특별한 부족함은 없다. 월급보다 더 쓰진 않기에, 과소비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고 절약하는 편도 아니다. 비싼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고가 소비에 끌린다. 작년에는 롤렉스 시계를 살 뻔했고, 지금 사용하는 지갑도 파리에서 산 명품이다. 절약은 여전히 낯설다. 식비를 10만원 이하로 줄이거나, 커피 한 잔을 사치라 여긴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사소한 지출을 줄이는 일조차 내게는 곧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건 내게 ‘절제’가 아니라 ‘처벌’처럼 느껴진다. 지금 쓰는 지갑도 꽤 비싼데, 파리에서 샀다.


공부할 때는 부모님에게 약간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시험 준비 막바지엔 부모님도, 나도 여유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궁핍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 달 식비를 10만원 이하로 줄이거나, 커피 한 잔조차 사치라고 여기며 버틴 적은 없었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에는 나처럼 중산층에서 자란 사람들의 약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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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제로 점으로 내려가라

가난을 일찍 경험한 사람들은 가난하였던 생활 수준이 출발점이었기에 그곳으로 언제라도 되돌아 가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한다. 그에 반해, 제로 점에서 출발하였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제로 점으로 가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여야 하는 미지의 불안한 공포로 느낀다. 바로 이 이유때문에 그들은 실패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실패 자체를 너무 두려워하다보니 되는 일도 별로 없게 된다. 낮은 곳에서의 삶을 체험하여야 나중에 경제적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나는 지금도 믿는다. 실패를 하여 빚에 허덕일 때는 생활비를 극도로 줄이고 자신의 몸값을 비싸게 만든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다른 방법은 너에게 돈 빌려준 사람들이야 망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면 외국으로 온 가족이 다 야반도주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아내와 법적으로 이혼하면서 전셋집은 넘겨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는 월급 압류가 들어올 것이므로 직장은 그만두고 세금 안 내는 다른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 몰래 가족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 방법들은 모두 싫다면, 술 한방 먹지말고 아주 예리한 면도칼 하나를 사고 가족사진을 앞에 놓아라. 그리고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거울 앞에 서서 네 목에 흐르는 핏줄 바로 위에 칼을 갖다 대라. 너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네 가족은 너를 평생 패배자로, 도망자로 기억할 것이다. 그 점을 명심해라. 그래도 죽고 싶다면 죽어 버려라. 그러나 죽은 뒤 그런 식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면 죽을 각오로 처음부터 빈손으로 다시 시작해라. 판잣집으로 가서 월세살이를 하란 말이다. 5년만 지나면 모두가 너를 자랑스럽게 생활것이다. 빚이 있는데도 삶의 질과 품위를 유지하려고 들면 그 빚은 갚아야하기 때문에 돈은 쌓이지 않고 희망을 갉아먹힌다. 마이너스의 희망뿐이다. 그것은 절망이다.

경제적으로 실패하였다면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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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내가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읽은 부분은 나름대로 발췌요약한 것이다. 세이노는 ‘제로점으로 내려가 본 적 없는 자는 미지의 공포에 휩싸인다’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내 허점을 정확히 찔러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제로점 가까이까지 가본 적은 있어도, 진짜로 내려가 본 적은 없다. 결국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그 공포를 우회했기 때문이다. 나는 제로점에서 시작해 본 적이 없다. 시험에 계속 떨어지면서 제로점에 가까워진 적은 있다. 그래서 그 글이 더 크게 와닿는다. 하지만 실제로 제로점까지 내려가진 않았다. 나는 제로점의 문턱에 도달했지만, 그 문을 통과하기 직전에 시험에 합격했다. 그 시기에는 통장 잔고가 빠르게 줄고 있었고, 불합격이 반복되며 자신감이 무너져 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애지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뭔가를 개척하겠다는 생각보다, 단지 미지의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정말로 망하면, 제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변리사 시험을 혼자 준비해서 합격한 경험이 있고, 이 지식을 바탕으로 법률 과외나 컨설팅 같은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도 했고, 인생의 쓴맛도 봤다. 예를 들어, 변리사를 못하게 되더라도 시험 합격 경험이 있다. 그걸 바탕으로 관련 과외도 할 수 있다. 내가 수입이 완전히 끊기거나, 빚을 지게 되더라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계획을 세워 실행할 수 있을 만큼의 정신적 체력과 감정 조절 능력이 나에게 있는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연휴 기간, 소비라는 나의 아킬레스건에 대해 글을 쓰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 때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방송에 출연했던 “이종용”이라는 분이다. 그는 사업 실패 후 빚을 지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았다. 안타깝게도 잠을 줄이면서 대장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주변 사람들은 많이 슬퍼했다고 한다. 궁금하다면, 아래 나무위키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https://namu.wiki/w/%EC%9D%B4%EC%A2%85%EB%A3%A1


정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이 안락함을 벗어던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판잣집에서 살며, 희망을 붙잡고 버틸 수 있을까. 누군가 빚을 갚기 위해 5년간 제로점에서 살아간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존경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까


내가 가진 자산은 지식이다. 하지만 실패의 바닥에서 나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건, 그 지식을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다. 나는 지금도 확신하지 못한다. 진짜로 굶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내가 굶주릴 수밖에 없는 날을 더 두렵게 만든다는 걸. 지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와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 삶의 가장 깊은 아킬레스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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