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찍힌 숫자는 ‘내 돈’일까

by 쩨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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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이 글은 유튜브 영상 「Those who realize this can change the future with Bitcoin」(YouTube) 내용을 바탕으로, ‘비트코인’을 투자 자산이 아닌 ‘소유권(자산 주권)’의 문제로 재해석한 인사이트 칼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r6vJ8fFW3U

통장에 찍힌 숫자는 ‘내 돈’일까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는 ‘위험’을 가격 차트에서 찾습니다. 변동성, 낙폭, 손절선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영상 속 이야기는 차트 바깥에서 시작됩니다.

어제까지 정상적으로 돌아가던 은행이, 어느 날 아침 아무 경고 없이 송금이 막히고 인출이 제한됩니다. 잔고는 그대로인데, 그 잔고는 더 이상 삶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돈이 사라진 게 아니라, 돈의 기능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내가 가진 것은 자산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발행한 ‘사용 허가증’인가.”

레바논의 사례는 그 질문을 과장 없이 보여줍니다. 2019년 이후 레바논에서는 사실상 자본 통제와 예금 인출 제한이 장기간 지속돼 왔고, 해외 송금도 크게 막혔습니다. 은행이 문을 닫거나(파업 형태로) 고객 접근을 제한하는 상황도 반복됐습니다. 2025년 말까지도 ‘동결된 예금’ 문제를 어떻게 분담하고 돌려줄 것인지가 국가적 의제로 남아 있습니다.

핵심은 “특정 국가가 특별히 나빠서”가 아닙니다. 위기가 오면, 국가와 금융 시스템은 본능적으로 자기 보호 모드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때 개인의 자산은 종종 “권리”가 아니라 “정책의 대상”이 됩니다.


예금은 자산이 아니라 ‘은행에 대한 채권’이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런 상황을 낯설지 않게 봅니다. 증권 계좌의 주식도, 예금도, 보험도, 연금도… 대부분은 ‘내 손에 쥔 물건’이 아니라 어딘가에 기록된 권리(클레임)입니다. 평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사회가 효율적으로 돌아갑니다.

문제는 레짐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유동성이 마르고, 외환이 부족해지고, 정치가 흔들리고, 사회가 불안해질 때—그 권리는 종종 ‘계약’이 아니라 ‘재량’으로 변합니다.

영상에서 토니 야즈백(Tony Yazbeck)이 말하는 깨달음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그가 공동 창업한 The Bitcoin Way는 FTX 붕괴 이후 “제3자에게 맡겨 잃는” 구조를 줄이기 위해 ‘셀프 커스터디’를 전면에 둔 팀으로 소개됩니다. 또한 그는 25년 이상 사이버보안 경력을 가진 인물로 설명됩니다.

그의 결론은 투자 관점의 ‘수익’이 아니라, 금융공학 관점의 ‘소유권’입니다.


“당신의 키가 아니면, 당신의 돈이 아니다”가 의미하는 것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흔히 비슷한 문장을 말합니다.

“Not your keys, not your coins.”

이 말이 과격하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익숙한 자산의 대부분이 ‘키를 내가 들고 있지 않은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행의 UX를 신뢰하고, 브로커의 정산을 신뢰하고, 국가의 규칙이 내일도 같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믿음은 평시에는 합리적입니다. 다만 그 믿음이 절대적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자산의 본질을 놓칩니다.

영상은 이 지점을 ‘마인드셋’으로 나눕니다.

피아트 마인드셋: 비트코인을 “달러를 더 벌기 위한 경유지”로 본다.

주권적 마인드셋: 비트코인을 “최종 결제 계층, 즉 소유 가능한 화폐 시스템”으로 본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부터 질문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얼마에 샀냐”가 아니라, “누가 내 자산의 스위치를 끌 수 있냐”가 됩니다.

비트코인은 2009년 등장 이후 지금까지 계속 운영돼 왔고, 이 지속성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정치와 무관하게 굴러가는 시스템’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이 문장을 맹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투자자가 놓치기 쉬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비트코인의 가치 논쟁은 결국 ‘가격’이 아니라 ‘통제권’에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자유에는 비용이 있다: 셀프 커스터디의 현실적 리스크

여기서 반드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자산 주권’은 낭만이 아니라 운영 리스크의 인수입니다.

셀프 커스터디는 편리함을 포기하고, 보안과 절차를 스스로 책임지는 선택입니다.
키를 잃으면 복구가 불가능할 수 있고, 피싱·사기·실수·상속 문제까지 모두 개인의 과제가 됩니다.

그러니 이 논의는 “비트코인이 답이다”가 아니라, 훨씬 성숙한 문장으로 가야 합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리스크를 시스템에 맡기고, 어떤 리스크를 내 손으로 가져올 것인가.”

토니 야즈백이 비트코인을 “플루토늄처럼 다뤄야 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습니다. 강력한 도구는, 강력한 책임을 요구합니다.


투자자에게 남는 건 ‘종목’이 아니라 질문이다

이 영상이 좋은 이유는, 결론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기준을 묻습니다.

아래 세 가지 질문만으로도, 포트폴리오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내 자산의 대부분은 ‘내 것’인가, ‘누군가의 부채(약속)’인가.

위기 시나리오(금융 스트레스, 자본 통제, 거래 정지, 플랫폼 리스크)에서 무엇이 먼저 멈출까.

내가 통제권을 가져와야 하는 자산의 비중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편의 vs 주권의 균형)

비트코인이든 아니든, 이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는 순간 투자는 더 이상 ‘정보 게임’이 아니라 구조 설계가 됩니다.


맺으며: 가격이 아니라, 소유의 문법을 다시 쓰는 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은행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세계”를 기본값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세계는 편리했고, 대부분의 시간에는 합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레바논이 보여주듯, 금융 시스템은 영원히 ‘사용 가능’하다고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통장 속 숫자는 자산이 아니라 정지된 권리가 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모든 문제의 해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비트코인이 강제로 또렷하게 만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내 자산’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정말로 내 손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능력.
그 능력이, 결국 위기에서 가족과 미래를 지키는 ‘투자자의 체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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