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죽음이 주는 의미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살아가는 법

by 쩨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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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죽음이 주는 의미 -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살아가는 법

죽음이라는 궁극의 스승

"삶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실로 우주적인 역설이다."

제17장은 책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주제를 다룬다. 저자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장 훌륭한 스승으로 재정의한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적 성찰이 아니다.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비로소 삶을 온전히 살 수 있다는, 실천적 지혜의 핵심을 담고 있다.

왜 죽음이 가장 훌륭한 스승인가? "어떤 사람이나 상황도 죽음만큼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죽음은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함으로써 모든 것을 가르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우쳐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죽음은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린다." 죽음은 우리의 집착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이 모든 인간은 인종과 빈부를 초월하여 동등하며 차별이 없음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죽음은 단번에 만인을 동등한 위치에 가져다 놓는다." 죽음 앞에서 모든 차이는 사라진다. 이것이 죽음이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죽음을 언제 만날 것인가

그렇다면 핵심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문제는, 죽음을 스승으로 모시게 될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작정이냐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죽음이 실제로 찾아와서야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인가.

"현명한 사람은 내쉰 숨을 다시 들이킬 수 없는 순간이 언제든지 닥칠 수 있음을 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식이다. 현명한 사람은 이론적으로만 죽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더 분명하게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피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것임을 전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인다." 여기서 '전적으로 완전히'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반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배우는 삶의 태도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을 활용할 것인가? "어떤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언제든지 죽음을 생각해 보라." 이것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더 높은 차원을 제시한다. "가장 높은 삶을 살도록 당신을 자극하기 위해 죽음이 동원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왜 모든 것을 빼앗길 때에 이르러서야 내면 깊이 들어가서 가장 높은 잠재력에 이르기를 배우겠다는 것인가?" 죽음이 실제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지금 당장 내면으로 들어가 가장 높은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죽음이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면 어떨지, 기꺼이 자신을 들여다봐야만 한다. 그러든 말든 아무런 차이도 없을 만큼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죽음이 오든 오지 않든 평화로운 상태, 그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경지다.

죽음의 실상을 받아들이기

저자는 이제 가장 직접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죽을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죽음은 확실하고, 그 시기만이 불확실하다.

"죽음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앗아갈 것이다. 그것이 죽음의 실상이다." 죽음은 선택적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모든 것을 가져간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바뀌어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은 사실 그다지 실제적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놀라운 통찰이 드러난다. 죽음이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는 것들은, 사실 그다지 실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되살펴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좀 더 깊숙이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른다." 죽음이 앗아갈 수 없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삶의 태도만 바꾸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가? 놀랍게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깊은 진실을 받아들일 때 멋진 점은, 삶을 온통 바꿔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삶을 살아가는 태도만 바꾸면 된다."

이것은 엄청난 해방이다. 직업을 바꾸거나, 관계를 끊거나,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은 태도의 변화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온전히 자신을 바쳐서 그것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을 바쳐서 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방해하는가? "우리로 하여금 그토록 겁에 질린 채 삶을 그냥 즐기지 못하도록 막는 우리 내면의 그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 정체를 밝힌다. "우리의 이 부분은 다음 일이 반드시 제대로 풀리게끔 하려고 너무나 바쁘게 애쓰느라고, 그냥 지금 여기의 삶을 살지 못한다."

미래를 통제하려는 마음, 그것이 현재를 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는 동안에는 죽음은 호시탐탐 우리의 뒤를 밟고 있다." 우리가 미래를 걱정하는 동안, 죽음은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죽음 앞에서 사는 법

이제 저자는 절박한 질문을 던진다. "죽음이 오기 전에 정말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경고한다. "아마도 예고 따위는 없을 것이다. 자기가 언제 죽을지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숨을 쉬고는 다음 숨을 쉬지 않았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죽음은 예고 없이 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죽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러니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하는 겁에 질린 당신의 그 부분을 놓아 보내는 일에 나날을 사용하기 시작하라." 이것이 실천이다. 매일매일을 두려움을 놓아 보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으니, 해야 할 말을 서슴없이 하고, 해야 할 일을 주저 없이 하라." 죽음의 확실성이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오롯이 임하라. 이것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사는 방식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다. "당신 또한 매 순간 죽음을 대면하고 있으니,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죽음과 함께 사는 삶

저자는 구체적인 실천을 제시한다. "항상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것처럼 살기를 배우라. 그러면 당신은 더 대담해지고 가슴이 더 열릴 것이다."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대담하게 만들고 가슴을 열게 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삶을 온전하게 살면 마지막 소원 같은 것은 품고 있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았으므로." 후회가 없는 삶이다.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았기에, 죽을 때 "이것만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다.

"그래야만 당신은 삶을 온전히 경험한 것이고, 살기를 겁내는 당신의 부분을 놓아보낸 것이다." 온전한 경험, 그것이 목표다. 두려움 없이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

저자는 이제 삶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삶에서 얻어야 할 유일한 것은 삶을 경험함으로써 오는 성장임을 당신이 이해했을 때,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삶에서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성장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삶을 기꺼이 살고자 하는 태도이다." 핵심은 태도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사건들을 기꺼이, 오롯이 경험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나온다. "삶에서 어떤 특별한 경험을 건져내고 싶어하는 욕망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경험을 놓치게 만든다." 특별한 경험을 찾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현재의 경험을 놓치게 만든다.

결론은 명확하다. "삶이란 얻어내는 무엇이 아니라 경험하는 무엇이다." 삶은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과정이다.

죽음, 해방자이자 친구

이제 저자는 죽음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한다. "죽음은 삶에 의미를 가져다 준다. 죽음은 당신의 벗이다. 죽음은 당신의 해방자이다." 죽음은 적이 아니라 친구이자 해방자다.

"하늘에 맹세코, 죽음을 겁내지 마라. 죽음이 일러주는 것을 배우도록 애써라." 저자는 강력하게 말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죽음에게서 배우라고.

"배움의 가장 높은 길은 삶의 매 순간을 앞에 두고, 그것을 온전히 사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절실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다. 매 순간을 온전히 사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매 순간을 온전히 살면 삶은 충만해지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온전한 삶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

완전한 경험

저자는 놀라운 통찰을 제시한다. "모든 경험을 온전히 살아가면 죽음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앗아가지 않는다." 어떻게 죽음이 아무것도 앗아가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이뤘으므로 빼앗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온전한 경험을 통해 이미 모든 것을 이뤘다면, 죽음이 무엇을 빼앗아갈 수 있겠는가.

"현자가 언제나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의 경험은 이미 온전하고 완전하므로 죽음이 언제 오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현자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주어진 시간 동안 더 깊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시간의 양이 아니라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

매 순간을 살아가는 법

이제 저자는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이 삶의 매 순간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삶의 경험으로 당신을 완전히 채워라. 삶이 당신 존재의 밑바닥을 건드리게 하라."

이것은 피상적인 경험이 아니다. "삶이 당신 존재의 밑바닥을 건드리게 하라"는 것은, 경험이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것이 불가능한 순간은 없다." 모든 순간이 이런 깊은 경험의 기회다. "심지어 당신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그저 삶의 또 다른 경험으로서 바라보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삶의 경험이다.

"죽음이 모든 것을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사실은 깊은 평화를 가져다 준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의 덧없음이 평화를 준다. "모든 것이 그저 시공간 속을 지나쳐 간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집착이 사라지고 평화가 온다.

결론: 죽음의 낭떠러지에서

저자는 마지막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을 겁내지 말라. 죽음이 당신을 해방시키게 하라. 죽음으로부터 삶을 온전히 경험할 용기를 얻어라."

하지만 중요한 구분이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것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지, 일어나기를 바라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다른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애쓰느라고 삶의 한 순간도 허비하지 말라. 당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감사하고 음미하라." 삶을 바꾸려 애쓰지 말고,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경험하라.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모르겠는가?" 이것은 단순한 수사적 질문이 아니다. 실제로 매 순간 죽음은 다가오고 있다.

저자는 최종 지침을 준다. "이것이 삶을 사는 방법이다. 죽음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살라. 왜냐하면 실로 그러하니까."

우리는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죽음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 다음 순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매 순간을 마지막인 것처럼 온전히 살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살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살게 하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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