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없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5살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다. 나는 91년생, 남자친구는 96년생. 나는 사회생활 7년차, 남자친구는 8개월이 막 지나고 있다. 이런 우리가 처음 만난 때는 4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는 29살, 그는 24살이었던 2019년이었다. 아직도 남자친구는 "19년도에..."라며 그 때의 우리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의 가치관은 여러가지가 닮아있었지만 특히나 연애, 결혼, 남녀 관계 등에 대한 생각이 잘 맞았다. 보통 연상-연하 커플이면서 여자가 30대인 경우라면 결혼 적령기가 지나고 있는 여자친구때문에 남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반대였다. 결혼을 빨리 하고싶다고 말하는 24살짜리 군인 남자애와 결혼을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29살의 나. (하지만 빠른 결혼을 하지 못하고 20대 후반이 되었다는 남자친구의 슬픈 이야기;) 우리는 서로 애인도 없는 주제에, 처음부터 결혼이나 연애 가치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우리 둘 다 결혼식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 하루를 위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예비 신부들을 보면 꼭 그래야만 하는건가 의문만 들었다. 남들 앞에 서는 것도 그렇게 즐겁지 않을 것 같았다. 낯도 가리고, 무엇보다 저 위에 올라선 나를 보면서 한두마디 자기들끼리 쑥떡거릴 하객들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는, 낯을 많이 가린다. 내 친구들이나 동생, 아빠에게 소개할 때도 눈 마주치기를 어려워하거나 고개를 드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앞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 몇을 모아놓고 하는 작은 파티로 대신하는 것을 염두해두었다고 한다.
우리가 결혼식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이것뿐이 아니다. 결혼을 축하해주러 오고 가는 하객과, 그들을 초대한 신랑 신부 사이에 금전적인 문제로 괜히 마음이 상하는 일도 싫었고 내가 하는 결혼식인데 부모님 지인만 잔뜩 앉아있는 식장에서 마치 재롱잔치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하나하나를 모두 반박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중요한건, 우리가 특정한 누군가의 결혼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게 될 결혼식의 모양을 떠올리며 들었던 우려들을 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가 왜 식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는지도 함께 적어보려고 한다.
결혼식, 진짜 안해도 되려나...?
우리 아빠는 딸의 결혼식에서 본인이 어떤 공연을 펼칠지 꽤나 오랫동안 꿈을 꿨다. 30여년간 나름 영업직종에 속해 있었다보니 이집 저집 다니며 나눠 준 축의금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내게, "너네는 꼭 결혼 해야해. 아빠가 뿌린게 얼만데?"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했다. 그런 아빠께 결혼 하려는 사람이 있고, 우리는 언제 결혼을 결심했으며 결혼식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더니 당연히 식은 꼭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은 확고했다. 우리는 결혼식을 준비 할 금전적 여유도 없고, 식장 예약이며 드레스 투어며 아무것도 하고싶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결혼식을 안해도 되나?'라는 불안감이 조금씩 자라났다.
그래서 유튜브에 '결혼식 없는 결혼'이라고 검색해보기도 했다. 결혼식을 하지 않은 부부들이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영상들을 몇 가지 보면서 식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지만 그럼 식이 없는 결혼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조금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은 결혼식을 기점으로 전과 후에 집을 구하거나 동거를 시작하는데 우리는 그 '기준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시작하게됐다. 결혼식 없는 결혼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결혼까지 달성(?)하는지. 결혼식이 없는 대신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분들께 어떻게 인사를 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결혼을 알릴 것인지, 등등 우리가 준비하는 결혼에 대해서 일기처럼 써 보려고 한다. 혹시라도 결혼식 없는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면 우리가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마케터답게(?) 남자친구에게 별명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 중 가장 오래 부르고 있는 별명이자 애칭은 '미미공주'이다.
3년만에 만난 그는 별안간 단발인 나보다 긴 머리로 나타났다. 게다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그의 또 다른 면모가 있었는데, 굉장히 섬세하고 민감한 것이었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아침 먹고 하라면서 스타벅스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다주더니 가만히 앉아서 내가 일 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내가 뭘 자꾸 떨어뜨리니까 떨어뜨리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받아내질 않나, 첫 차를 샀다는 나를 위해서 하나하나 다 시향 해 보고 사다 준 차량용 방향제와 연락처 안내 판까지 그는 섬세 그 자체였다. (카카오 프렌즈에 가서 골라옴...)
그래서 뭔가 공주스러운 별명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그때 떠오른 것이 '미미공주'였다. 사실 그는 미미 공주와는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미미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