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없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
저녁에 아버지랑 잠깐 통화를 한다던 그에게서 "잠깐 전화 줄 수 있어?"라는 메세지가 와 있었다. 메세지가 온지 벌써 몇 분이 흐른 뒤라 혹시 무슨일이 있나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잠들려다가 깼다면서, 무슨일이냐고 묻는 내 말에 "이미 다 설명한 일인데, 아빠가 또 다시 묻더라고..."라며 답답함을 표현했다. 우리는 이미 2개월 전에 양가 부모님께 다음 해에 결혼할 것이고 식은 없이 둘이 함께 사는 것을 시작을 결혼의 시작으로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역시 한번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존중 해 주실거고 어머니는 반대하실 거라던 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머니는 한두번의 이야기로 설득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괜찮냐고 물으신 것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하면 우리의 결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지 고민 했었다. 아직도 아빠는 작은 규모라도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묻거나 동생을 통해서 정말 결혼식을 안하겠다는 거냐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이 결정이 꽤 진지하게 고민되었음을 잘 설명 드리고 싶어졌다.
우리는 왜 결혼식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우리에게 어떤 이점을 줄까?
아마도 각 집의 부모님들은 내 자식이 상대방에게 강요했다고 염두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도 물론 평소의 내 성격을 잘 아는 아빠가 나를 설득하면 했지 남자친구를 설득하지는 않았고, 남자친구의 부모님도 보통 결혼식은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다수의 의견이 있기때문에 계속해서 여자친구인 나의 의중을 물으며 걱정하시는 듯 했다.
어렸을 때는 결혼식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 굳이 화려하게 겉치례를 해야하는가 싶었고, '결혼식은 부모님이 주인공이다'는 것도 마음애 들지 않았다. 먹고 살기가 녹록치 않았던 시절에야 서로의 애경사에 돈으로 한두푼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필요했다지만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이전보다 나아지면서 결혼이 품을 나누는 개념이 아닌 성대하게 보여주고 거하게 한 몫 챙기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친구의 결혼식 준비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꼭 이런 허례허식만 챙기는 결혼식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는 본인이 어디에서 어떻게 빛날지보다 하객들이 먹을 음식과 방문할 때 교통은 편한지 식장 내에서 이동하기에 불편함이 없을지를 고려하면서 몇 번이나 식장에 방문하고 고민했고, 그 모습을 보며 결혼식은 내가 돋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이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대접하는 자리라는 것을 깨닳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럼 나도 결혼을 준비해야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몇 천만원에 달하는 결혼 비용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웠고 결혼'식'이 나의 성향과 맞지 않다면 필수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변치 않았기때문에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게다가 우리가 결혼식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단순히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겉치례를 하지 않겠다는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우리 둘 다 '내향인'으로 낯을 많이 가리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앞에 서있는 상황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되기도 했기 때문에 결혼식을 생략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수 많은 결정과 갈등이 축약된다.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벌써 반년이 넘게 흐르는 동안 우리는 '식을 준비하지 않는 이점'을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 결혼식을 한 친구는 1년안에 준비해서 하는 것도 촉박하게 느껴진다고 했고, 올 해 만난 지인들 중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 모두 기본 준비 기간을 1년정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둘이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3종만도 벅찬데 식장도 예약해야하고, 식장에 음식도 시식해서 정해야 하고. 동시에 각자 직장생활도 해 내야한다. 각 항목마다 후하게 쳐 줘서 3개월씩의 시간을 배분한다고 해도 1년이 모자랄 것만 같았다.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우리는 이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었다. 주말이면 눈 구경하러 강원도에 가고, 연휴엔 집에서 내내 먹고, 쉬고, 노는 여유를 누렸다. 여유 시간을 즐기는 와중에도 혹시 우리가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나는 다이어트 하느라 이 맛있는 음식들을 다 참아야 했을 것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드레스 투어, 식당 투어를 다니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초초함에 정신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결혼식 안하기로 한 것이 참 뿌듯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도 명확하고 단촐해졌다.
나에게 집은 아주 중요한 항목인데, 가령 동생과 둘이 살 자취 집을 구하면서도 집 구하는 한달 내내 신경이 곤두섰었다. 옆 건물과 너무 가깝지 않아야 하고,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몇 분 이내이면 좋겠고, 창문의 크기나 방 갯수, 층수 등 따질 것이 많기때문에 집을 구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다. 그렇기때문에 집을 구하는 동시에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을 생각하기도 어려웠는데 다행히 결혼식을 생략하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집 구하기에 좀 더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좋은 것은 비용 절감이었다.
식장을 대관하는데만 최소 몇 백에서 몇 천만원, 드레스 대여와 식사 등 스드메 패키지는 최소가 3천만원, 많게는 1억이 가까이 든다는 말을 듣고 꼭 저렇게 해야만 할까 생각했었다. 먼저 결혼한 사람들은 그 돈은 어차피 축의금으로 매꿀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빚을 만들어서 결혼식을 하고, 결혼식으로 빚을 청산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것은 내 가치관에 기반한 생각인데, 대출을 받거나 모아둔 돈을 다 써가며 치루는 결혼식이 내게 주는 이점이 무엇일까 싶었다. 우리 둘이 좋아서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 결혼인데 큰 돈을 지출해가며 치루는 결혼식이 과연 우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걸까? 온통 의문 투성이였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을 옵션에서 제외하면서 몇 천만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결혼식을 꼭 해야만 할까?
"나는 사실 결혼식 안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해야할 것 같아."
가장 안타까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동료 할 것 없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듣는 말인데, 내 결혼식을 부모님의 의사에 따라 준비하면서 '나는 하기 싫었다'구 말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욱 '부모님의 의사보다는 내 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결혼식을 꼭 해야하는걸까?
코로나 대 유행의 시기를 겪으면서 양가 하객 수를 50명 이하로 제한 받기도 하면서 많은 부부들이 결혼식을 포기하거나 미루기도 했는데 이들의 결혼 생활이 결혼식을 한 누군가보다 더 힘들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물론, 결혼식을 꼭 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생략한 경우에는 마음에 계속 아쉬움이 남았을 테지만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은 경우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는 것이 이미 증명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식은 크게 드러내는 행사인만큼 결혼식을 한 사람들의 소식이 많지만 이 행사를 생략한 사람들에게는 큰 행사가 없기때문에 그저 드러나지 않을 뿐 이미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은 수의 부부들이 노웨딩(No wedding)선택하기도 했다.
그러니 결혼식을 꼭 해야하냐 묻는다면 '선택 옵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상황이나 성향, 가치관 등에 따라 충분히 선택할 수 있고 그 규모나 형태도 내가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아쉬운 마음을 다 챙기기는 것도 물론 좋은 의미가 있겠지만 결혼의 당사자인 나와 우리의 의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우리가 즐겁고 편안한 결혼을 만들어가면 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