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아니 한국에서의 내가 싫어서
* 도피성 워홀 5개월 차의 감상
아주 오랫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야심 차게 '30대 워홀러로 살아가는 팁'을 공유하겠노라 시리즈까지 만들었지만 왠지 네이버 블로그와는 다르게 완성도 있는 글만 올려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쉽사리 이 플랫폼에 손이 가질 않았다.
3일을 내리 아팠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워홀러에게 유급휴가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쉬는 만큼 금전적 피해가 발생한다. 축 나버린 체력과 잃어버린 정신머리를 찾고자 해 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태초의 나로 돌아가보고자 기억을 상기시키다 보니, 이 글을 브런치에 발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말하는 "도피성 워홀"을 온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하면 과장이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그 병증으로 보냈다. 한 번 그렇게 생겨버린 좌절의 습(習)은 인생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쉽게 꺾었다. 작년 퇴사를 하고, 인대를 다친 후 반년 넘게 제정신 머리가 아닌 사람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해를 보는 게 너무 두려웠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당시 썼던 에세이 '나의 고통에게' E-book 구매하러 가기)
어느 날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느 날은 죽어야 끝날 것 같다 생각했다. 그러던 중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나이 제한이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 구 영미권 사대주의자로서 항상 나가서 살아보고 싶었던 바람이 마음속에서 꿈틀 댔다. 아무것도 못해보고 이대로 생을 마치느니 해외 땅이라도 밟아보자는 게 내 워킹홀리데이 결심의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이 싫어서 아니 한국에서의 내가 싫어서. 정확히는 내 습(習)이 싫어서 이곳으로 왔다.
처음 한 달은 마냥 좋았다. 당연하다. 한국에서도 일 안 하고 월에 몇 백씩 쓰면 기부니 조크든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아주 간사하다. 죽지 못해 떠나온 곳에서의 삶이기에 아무 기대가 없다고 했지만 조금만 그 마음을 들추면 화장실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완전히 변해버린 마음이 우글거리고 있다.
영어가 획기적으로 늘었으면 좋겠고, 돈은 여느 유튜버들처럼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로컬 친구들도 많이 사귀면 좋겠어. 아 기왕이면 로컬 사무직을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해.
'돈이 많고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어요.'와 같이 현실성 없는 막연한 기대가 사고에 스며들수록 녹록지 않은 현실에 괴리가 생긴다. 가뜩이나 몸을 쓰는 일을 해서 육체적으로 지쳐있는 상황에 정신까지 지쳐간다. 결국 번아웃을 맞는다. 처음에는 새로워서 좋았던 것도, 이제는 언제까지 이렇게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나라는 회의로 번진다.
그러다 문득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나카시마 미카의 명곡이 떠올랐다. 맞다. 나 여기에 죽지 못해 온 거였지. 언제나 알고 있었던 사실이 대수롭게 발견한 것처럼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이곳에 와서 내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는 날이 많이 줄었다. 무기력하게 집안에만 누워있는 날은 손에 꼽게 되었다. 우울한 감정을 떨치기 위해서 몇 주나 걸리던 시간이 여기서는 며칠로 줄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날이 줄었다. 수면제 없이도 잘 수 있게 됐다. 서로의 삶을 응원해 주는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물론 흔히들 '성공한' 워홀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영어, 돈, 로컬 친구 중 내가 이룬 것은 아직 없다. 아이엘츠 6.5 수준의 영어는 안드로메다로 퇴화했고, 돈은 여전히 마이너스고, 로컬 친구보다는 한국인 친구가 훨씬 많은 데다가 다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적극 말리는 '한인 잡'을 구해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순전히 나라는 사람에 대한 주관적 지표로 본다면 이곳에서의 나의 여정이 꽤나 괜찮은 것 같다.
새로운 곳에서 삶이 좋은 점은 모든 게 새롭다는 것이고, 좋지 않은 점 또한 모든 게 새롭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적응해 나가야 하는 삶에 지칠 때마다 태초의 나를 떠올리며 쉽게 좌절하는 나의 습(習)을 끊어 내야겠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 하나를 끝내고 나니 괜히 뿌듯하다. 세상 그 어디에서 살더라도 '작가'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에게 내걸었던 약속을 지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