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scratch
나의 처음 해외살이가 시작된 곳, 캐나다 밴쿠버. 어릴 때부터 항상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선망해 왔지만 그간 스스로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핑계가 뽑는 족족 줄줄이 딸려오는 감자알처럼 길게 늘어졌고, 해가 갈수록 '외국이나 한국이나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나를 국내에 머물게 했다.
원하지 않았던 자발적 퇴사* 이후 의도치 않은 1년가량에 공백 앞에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행사장 풍선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김없이 또 '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할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살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해외 살이라도 해보고 와야 덜 억울할 것 같다고.
* 어폐가 있는 수식어지만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다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마침 캐나다의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의 나이 제한이 만 35세까지 올라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캐나다, 영국,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만 30세까지의 나이 제한을 가지고 있다.) 지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고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자가 끝난 뒤, 한국에 돌아오면 뭘 하지?'라는 거대한 물음이 시간을 지체시켰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규정하는 '워홀 가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의 무게치고 결정을 내리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진 않았다. 딱 한 달을 고민했다. 죽는 거 보단 외국을 가는 게 낫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약 4개월가량의 준비 후 나는 밴쿠버행 비행기에 내 몸을 실었다.
"처음부터", "완전히 맨바닥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곳에 온 지 일 주 일 차쯤부터 꿈이 점점 선명해졌다. 잠의 깊이가 다시 얕아진다는 얘기다. 꿈을 이루지 못했음에도 꿈이 제일 먼저 새로운 곳에 적응한다. 잘 때 꾸는 것과 이루고 싶은 포부는 서로 그리도 다르 건만 어쩌다 꿈(Dream, 夢)이라는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최초로 언어를 규정한 사람들은 그 둘이 너무나 다르지만 알고 보면 백지 한 장도 안 되는 차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일을 했다. '일'이라는 것은 노동에 대해 값이 산정되어 돌아옴을 뜻한다. 주방에서 열심히 치킨을 튀기고 있는데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했던 대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왜 직장을 다니다 온 사람들이 현타를 느낀다는 건지 단 번에 이해했다. 내 처지가 불쌍하다든지,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 오건 아닌데라든지 하는 되지도 않는 자기 연민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좀 다 새로웠다. 나의 경력을 온전히 다 내려놓고 0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사실 이력서를 쓸 때 한국에서처럼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냥,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좋다는 생각으로 이력서를 무작정 돌렸다. 오래간만에 풀 집중을 해서 인지 단 몇 시간의 트레이닝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왔다. 여전히 기분은 묘하다. 바쁘게 지나간 시간이 신기하기도 하고, 일을 구해서 기쁘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파트타임으로는 내가 렌트한 썩 좋은 콘도의 렌트비를 감당하기에는 어림도 없겠다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기도 하고, 내 경력이 여기선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구나.
한국에서 나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다. 내향적이며 즉흥적인 것을 싫어하고, 거절에 민감했다. 여기 온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지만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별 고민 없이 이력서를 넣고, 연락이 오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는다. 이상한 업장에 걸려도 여기 말고 갈 데는 많다는 마인드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력서를 쓴다. 여기서 알게 된 워킹홀리데이 동료들이 갑자기 만나자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이 나간다. '나도 갈래' '나도 할래' '같이 가실래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중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워홀로 생긴 공백을 어떻게 메우지?'라는 고민에 대한 불안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확신이 있다. 여기 와서 때로는 힘들고, 우울하고, 불안할지언정, 후회는 없다. 경험해 볼 만큼 경험해서 이제 새로운 감정도, 경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삶이 한 달 만에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From the scratch. 바닥부터 시작하는 나의 이야기. 그러니까 서른이 넘어 처음 해외 살이에 도전하는 나의 새로운 성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