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1988년 9월 17일
올림픽과 북방외교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3』육십 두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88.09.17 서울 올림픽 개막 [위키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jpg
1988.09.17 서울 올림픽 개막 [위키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2).jpg

<서울 올림픽 개막 사진, 양측 다 퍼블릭 도메인>


1988년 9월 17일 서울 올림픽이 개막했다. 분단된 국가에서 열렸다는 점,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서 열렸다는 점, 휴전된 지 35년밖에 되지 않은 국가라는 점, 이전 올림픽에서는 인종차별 문제로 인한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의 보이콧, 공산 진영 국가의 보이콧, 자유 진영 국가의 보이콧 등으로 반쪽짜리 올림픽이 열렸다는 점 등 많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화합과 전진이라는 기치 아래 160개국의 13,626 명 선수단의 참여,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모든 국가가 참가했다는 점에 있어서 많은 의의를 남겼다.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각별한 투자와 관심을 가졌다. 우선 7년 동안 거짓 2조 3826억이라는 금액을 투자하여 서울 올림픽을 준비했다. 1987년 대한민국 예산이 15조 8500억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정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통해 종합 4위의 순위를 기록하며 스포츠 강국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호돌이 등의 마스코트 흥행과 <손에 손 잡고> 올림픽 공식 주제가 흥행 등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그 외에도 한강 수질 개선 사업,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 착공, 도시환경 정비사업 등 서울올림픽을 대비하여 각종 많은 사회 인프라 개선 사업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이다. 정부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대비하여 서울에 위치한 노점, 달동네, 도시빈민을 쫓아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김포공항과 올림픽대로 사이에 위치한 판자촌 철거를 뽑을 수 있다. 또한 개고기를 먹는다는 인식을 외국인에게 주지 않기 위해 개고기 판매를 금지시켰고, 도시미관 개선이라는 명목하에 앞서 설명했던 부랑자와 노숙인, 장애인을 수용시설로 보냈다. 또한 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을 통해 80년에 일어났던 5.18 민주화 운동을 빠르게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게 하는 효과까지 누리며 전두환 노태우 정부의 목표도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안타까운 역사적 장면도 존재한다.


참고로 북한은 서울올림픽의 성공에 강렬한 질투심을 느끼고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했다. 항간에 의하면 자국 GDP의 30%에 육박하는 47억 달러를 사용하여 행사를 개최하였으나 무리하게 예산을 사용한 탓에 북한 경제는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했다는 한 가지 이유로 북한의 경제가 붕괴된 것은 아니나 무리한 추진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북한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엄청난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에서 높이 250M에 육박하는 63 빌딩이 서울에 85년 완공되자, 북한은 질투심을 느끼고 1987년 류경호텔이라는 330M(101층) 규모의 건물을 평양에 지으려고 하였으나, 지금까지도(2026년 기준) 실내 개장을 못한 채 폐허로 남겨져 있다.


+)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7월 7일 공산권 국가와 수교할 의사를 밝히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른바 북방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후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소련, 불가리아, 몽골, 중국, 베트남 등의 동구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으며 북방정책을 실현시켰다. 또한 1991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까지 이루어내며 새로운 외교 정책을 실제로 구현해 냈다. 반면 국내 정치 쪽으로는 신군부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점을 희석시키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과 민주정의당은 통일민주당의 김영삼과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에게 합당을 제의했고, 제2 야당으로서 정치적인 한계를 직면하고 다가오는 대선에서 김대중보다 우위를 확실히 점하기를 희망했던 김영삼의 의지와 의원내각제 개헌을 희망하지만 의석이 부족해 어떤 정치적인 추진을 해낼 수 없었던 김종필의 목표가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이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며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였고,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유일한 야당세력이 되며 호남정당과 비호남정당이라는 최악의 지역구도가 형성되게 된다. 이 와중에 통일민주당 소속 국회 의원인 노무현은 "무효입니다! 이것이 어찌 회의입니까? 이의가 있습니다. 이의가 있으면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가 어디 있습니까?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도 있습니까?"라고 말하며 3당 합당의 불의를 언급하며 통일민주당을 탈당했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제1장 남북 화해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아니한다.

제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제5조 남과 북은 현 정전 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 정전협정을 준수한다.

제6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제7조 남과 북은 서로의 긴밀한 연락과 협의를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판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운영한다.

제8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 정치 분과 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화해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2장 남북 불가침

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

제10조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제11조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

제12조 남과 북은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 군사 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남북군사 공동위원회에서는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 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 인사 교류 및 정보교환 문제,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문제, 검증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추진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 전화를 설치·운영한다.

제14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군사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불가침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 및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3장 남북교류·협력

제15조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 내부 교류로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제16조 남과 북은 과학·기술, 교육, 문화·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제17조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

제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

제19조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 항로를 개설한다.

제20조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연결하며, 우편·전기통신 교류의 비밀을 보장한다.

제21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며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한다.

제22조 남과 북은 경제와 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합의의 이행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 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를 비롯한 부문별 공동위원회들을 구성·운영한다.

제23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교류·협력분과 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4장 수정 및 발효

제24조 이 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의하여 수정·보충할 수 있다.

제25조 이 합의서는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서로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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