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2007년 12월 7일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3』육십 일여덟 번째 장면

by 박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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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1호 허베이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건, 퍼블릭 도메인>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북서 방향으로 8km 방면 해상에서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선의 크레인이 기상악화로 와이어가 끊어지며 크레인이 무너졌고, 옆에 있던 '허베이스피릿호'와 충돌하며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허베이스피릿호'는 유조선이었다. 결국 유조선에 3개의 구멍이 생기면서 12,547L(78,918 배럴)이 서해바다로 유출되는 참사가 발생하게 되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원유 유출 사건이자, 자칫하면 서해 바다 전역과 남해바다 일부가 기름으로 오염되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사태였다.


8만 배럴에 육박하는 유출된 기름은 서해 바다 전역으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서해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의 특성과 당시의 강한 조류와 바람이라는 기상 상황이 겹겹이 쌓인 결과였다. 만리포 해수욕장을 비롯한 서해의 해안 지역은 기름으로 순식간에 오염되었으며, 기름으로 인하여 바다에 서식하는 어패류와 해양 생물이 떼죽음을 당했고, 천연기념물과 철새들의 서식지도 위협받았다. (실제로 전라남도 해안과 제주도, 추자도 근처까지 기름이 발견되며 서해 바다 전역이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유출 규모도, 오염 범위도 너무 큰 이 사태는 100년 이상의 회복 기간을 둬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습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가 태안, 서산, 보령, 서천, 홍성, 당진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지만, 사태는 극악으로 치닿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 저력은 여기서도 빛을 바랐다. 1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헌 옷, 흡착포를 이용하여 기름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규모는 대체 하루 최대 60,000명, 전체 추산 123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국민의 경이로운 헌신으로 1년 조금 안 지난 2008년 10월 경 해안 방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사건 규모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 기록은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 지역 목록으로 등재되며 해양 환경 보호의 성공 자료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 이 사건은 명칭 논란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기름 유출 사고는 선박의 명칭을 불렸는데, 유독 이 사건만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로 명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태안반도는 어업에 종사하는 시민과 관광에 종사하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명칭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예견될 수 있는 터였다. 따라서 정부는 이 사건을 '삼성-허베이스피릿호 기름 유출 사고'로 명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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