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연천군에서 근무했던 현역병이 겪었던 그날
한국 역사의 변곡점이 찾아왔었다. 그날의 밤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당시 나는 현역 군인으로서 복무하고 있었기에 자세한 당시 상황을 글로 기록할 수는 없지만, 부대 내에서의 분위기는 정말 전쟁 직전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였다.
가족을 지켜야 된다는 일말의 심정으로 군복을 챙기러 생활관으로 뛰어들어갔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군인이 국회의사당 창문을 깨부수고 있었다. 국회의원 보좌관들과 시민들은 정문을 비롯한 문을 틀어막으며 군인들과 대치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은 계엄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참담했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너무 당혹스러운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의 분기점 중 어디에 서있는 것일까? 너무나 두려운 순간이었다. 그날의 밤은 무척이나 추웠다. 한국의 미래를 장담할 수도 없었거니와 나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소식이 들려왔다. 계엄이 해제 표결이 통과되었다. "혹시 모르니 밖에서 더 대기하라."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그렇게 그 새벽이 지나갔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시간이 흘렀다. 벌써 9개월이 흘렀다. 나는 전역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시민들은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갔다. 정치도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대외변수와 헤쳐나가야 할 일들은 많이 산적해 있지만,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하고 있지만, 관심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당시의 사건을 미화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민을 제압할 의도는 없었다는 둥, 야당을 경고하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둥의 궤변이 나돌기 시작했다. 벌써 이 사건이 미화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혹스럽고 무섭다. 1987년 6 공화국 출범 이후, 38년 만의 이루어진 계엄사태를 가볍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계엄을 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장난으로 말하는 사람도 봤다. 충격이었다. 이렇게 이 사태가 이렇게 미화되어서도 가벼운 장난의 소재가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록들을 모으기로 했다. 저작권 최대한 신경 쓰면서 사태의 시간 순서대로 모든 내용들을 모으기로 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일 이후로 지금까지 80년 안되게 흐른 이 짧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 책을 작성하는데 오래 걸릴 것이다. 연재날을 지킬 수는 없을 것 같다. 천천히 완벽하게 기록하고 글들을 모으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여러분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당시 겪었던 일들을 보내주셔도 좋을 것 같다. 생생한 역사를 모으는 것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주는 자료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 하나만 더 드린다. 이 기록의 시작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최근 정치에 매몰되어 그저 모든 것들을 갈라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이 계엄사태는 진보, 보수를 떠난 잘못된 일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반대되는 의견을 갖더라도 한번 읽어보시라. 아마 다른 의견을 읽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많은 도움을 기대하며 서문을 마친다.
2025년 9월 21일 박재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