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분석>>
On Liberty, 직역하면 "자유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자유론"이라고 알려져 있다. 차라리 "자유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로 책을 한국에서 출판하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뭐 그건 사람들마다 생각하기 나름대로 인 것 같다.
우선 책의 내용은 상당히 어렵다. 뭔가 꾸역꾸역 읽고는 있는데, 내가 이걸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 글이 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가 헷갈릴 정도로 단어마다 주는 무게감이 남다르다. 보통 책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보통 책의 서문을 여는 프롤로그나 머리말과 같은 경우에는 자신을 굉장히 추켜올리는 말을 쓰거나, 책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것을 극복했다는 내용을 쓰거나 하는데, 밀은 머리말보다 앞에 자신이 하고 싶은 글을 적었다. 그 글에는 자신의 와이프를 예찬하는 머리말을 썼는데, 필자는 나름의 충격이었다. 아무래도 함께 많은 책을 썼던 와이프가 자유론을 같이 쓰지 못하고 사별한 것에 대한 충격이 큰 것 같았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흔히 말하는 '의지의 자유'를 다루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중략) 나는 이 책에서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그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책의 전체를 아우루는 주제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21p.)
이 책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 중 권력의 성질과 한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고 밀은 주장한다. 또한 이 책은 시민의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자유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모호해진 2025년 작금의 한국 현대 사회가 주목해야 할 책이 자유론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1p.)
또한 이 책은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방법으로 2가지를 소개했다. 우선적으로 정치적 자유 또는 권리라고 하는 불가침의 영역을 설정한 이후에 권력자가 이를 침범하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서 피지배자들의 국가적 저항이나 전면적 반란을 정당한 것을 인정한다는 것과 국가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구성원 또는 그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관의 동의를 얻도록 헌법으로 규정한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권력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자신이 하고 싶은 행위를 하게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타인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는 정도를 구분하고 이를 침범하면 의무 위반으로 간주하여 피지배자들의 저항이나 반란을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2024년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이 발생하였을 때 이 반헌법적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저항하기 위해 국회로 모인 수천 명의 국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밀이 쓴 자유론은 작금의 한국 사회와 계속 연계되고 있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23p.)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42p.)
각각의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있고, 결정을 토대로 마음껏 살아갈 자유가 있다. 하지만 이 자유는 항상 좋은 길은 아니며, 잘못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남이 정해주는 소위 옳다는 길을 가는 것보다는 틀린 길을 스스로 결정하며 가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고 밀은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가 항상 옳지는 않지만, 남이 정해준 올바른 길보다는 스스로 행하고 경험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 또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남이 정해준 길, 타인에 의해 쉽게 얻게 된 것은 쉽게 잃어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가들이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제에 저항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금의 한국 민주주의도 과거 민주화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국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흔들림이 있더라도 굳건히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부터 스스로 결정하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행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법의 힘을 통해 개인에 대한 사회 통제를 과도하게 확대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의 힘을 강화하는 반면 개인의 힘은 축소해 나가는 이런 부정적인 변화는 절로 사라질 일이 아니다." (43p.)
이 또한 대단히 시의적절한 말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진보 보수 정권을 떠나서 2020년대로 접어들면서 법률 만능주의가 팽배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는 있으나 그만큼 사회적 양극화와 소통(토론 등) 단절이 사회의 각박함을 심화시키는 대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장의 제목은 "생각과 토론의 자유"이다. 우선 이 장을 관통하는 핵심 문장을 하나 뽑아봤다. "다른 의견을 가질 자유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의 정신적 복리를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밀은 그 근거를 다음 문단에 4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든 의견은, 그것이 어떤 의견인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우리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음을 전제하는 셈이 된다." 이 문장을 통해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경고함과 동시에 반대의 의견을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경계해야 한다. 이 문장은 작금의 현대 사회를 직격 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무조건 자신이 진리고 옳다고 우기며 싸우는 이 상황은 현재 국내, 국외를 구분하지 않고 전 세계 정치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대체 밀은 어디까지 앞을 내다본 것인가?
"둘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이 아주 흔하다. 어떤 문제에 관한 것이든 통설이나 다수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다. 따라서 대립하는 의견들을 서로 부딪칫게 하는 것만이 나머지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민주주의의 어두운 부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자연스레 과반의 의견이 옳음이 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지적을 꿰뚫고 있는 문장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대립하는 의견들을 내버려두는 것이 나머지 진리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며, 여야가 서로 싸우는 것이 밀실로 합의하는 것보다 사회가 올바른 길로 가는 길이라고 밀은 강조하고 있다.
"셋째, 통설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 해도 어렵고 진지하게 시험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진리의 합리적인 근거를 그다지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그저 하나의 편견과 같은 것으로만 간직하게 될 것이다." 이 문장은 앞에서 밀이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적군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공부를 집어치우고 낮잠이나 자러 가게 마련이다. (97p.)" 결론적으로 상대편, 즉 라이벌이 있어야지 자기 자신의 이론이나 주장이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작금의 정치도 진보와 보수 양측의 날개가 있어야지 정치가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네 번째로 그 주장의 의미 자체가 실종되거나 퇴색하면서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더 첨언을 거듭하겠지만, 2장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챕터였다. 모든 내용이 추상적인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해하는 데에 오래 걸렸다. 사실 지금도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천한 법학도생인 내가 판단한 자유론 2장은 진리라고 하는 것은 판단할 수 없다. 다시 한번 더 이야기하면 옳고 그름을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인식하고 고민하고 토론을 해야 진리와 가까워질 수 있다.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현하는 오류들을 외면하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읽으면서 회의감이 드는 생각도 있었다. 가령 혐오표현이라고 하는 발언들을 공공장소에서 거듭 주장하여 선동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편의 주장 또한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그들을 내버려 둔다면 선동이 거듭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에 동조하게 된다면 오히려 모두가 불행한 사회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질문은 다음 장을 읽어보며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정통 주류의 의견과 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모든 탐구를 금지할 때,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이단이 아닌 사람들이다." (80p.) "단지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서 기존의 올바른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덕분에 실수를 피할 수 있는 사람보다는, 적절한 공부와 준비 끝에 자기 혼자 생각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진리의 발견에 더 크게 기여한다." (81p.)
소크라테스식의 변증법 공부에 있어서는 좋은 방법이다. 이는 토론식 공부이며 중세의 논변식 교육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다. (100-101p.) 지금의 이스라엘식 공부법도 위와 같은 공부 방법인 것 같다. 하브루타(Havruta)라고 부른다.
루소와 문명에 대한 이야기 (104-105p.), 특히나 정치도 양당이 있어야지 바람직함을 강조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진다는 단서는 두말할 것 없이 매우 중요하다. (중략) 어떤 종류의 행동이든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강압적인 통제를 받을 수 있으며, 사안이 심각하다면 반드시 통제를 받아야 한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간섭해야 한다." (123-124p.)
3장 개별성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천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천재란 독창적이고 튀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면서 밀은 치명적인 사회의 단점들을 열거한다. 특히나 무리 나 사회에서는 튀는 생각을 하거나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견해와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소수의 사람을 만나면 그를 멀리하고 옳지 않은 사람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 비판은 작금의 한국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대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특히나 튀는 것을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한 수치나 통계에 입각한 말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를 살아오면서, 특히나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내용은 다름 아닌 튀는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독창적으로 생각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분위기를 옳게 보지 않는다. 자연스레 학생들은 선생님이 질문을 하여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닫고 있는다. 이게 바로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더 나아가서 이야기하면 튀지 않는 행동을 강렬히 머리에 기억하게 만드는 장소는 바로 군대다. 군대에서는 한마디라도 그 무리나 집단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경계하고 싫어한다. 간부가 용사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고 동기끼리도 마찬가지다. 대학교는 뭐 다를 게 있겠는가? 그저 한국 사회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회,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숨기고 모두 내지는 다수가 생각하는 의견에 동조하는 동조사회로의 전락을 밀은 지적한다. 그러면서 밀은 독창적이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가 발전하는 사회라고 언급하며, 유럽이 선진국 대륙으로서의 반열에 오르게 된 계기에는 여러 인종과 민족과 국가가 어우러져 섞인, 소수의 견해들이 공존하고 서로 어울리는 사회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되었다고 책에서 강조한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국가로서 비잔티움 제국을 뽑으며,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필히 멸망할 것을 경고한다.
"개별성을 짓밟는 체제는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것이 신의 뜻을 따른다거나 인간이 만든 율법을 집행한다거나 하는 등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최악의 독재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누구의 어떤 행동이든 다른 사람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사회가 그에 대해 사법적 권한을 가진다. 사회가 그런 문제에 간섭하는 것이 과연 모두의 복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62p.)
"어떤 상황에서든 본인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충고나 경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이런저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실수라는 것도, 타인이 보기에 그에게 이익이 되는 듯해서 당사자의 뜻을 무시한 채 어떤 일을 강제할 때 발생하는 손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65p.)
"그러나 그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규칙을 위반했다면, 그런 경우에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하므로, 그에게 응징을 가해야 하고 명백한 징계의 표시로 고통을 주어야 하며 그 처벌이 충분히 무겁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170p.)
밀의 자유론 제4장은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막을 수 있는 이유를 소개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자유라고 부르짖으며 모든 행위를 다 허용할 수 없다고 밀은 주장한다. 왜냐하면 개인이 자유를 부르짖기 전에 사회에 속해 있고, 사회는 개인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가치를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개인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자유를 부르짖는다면, 공동체를 유지해야 하는 목적을 띄고 있는 사회는 그것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제4장의 주요 골자이다.
물론 개인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에게만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사회가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개인의 행동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만, 스스로 행한 행위가 손해를 입는다고 하여 그것을 제한하는 것보다 스스로 그것을 겪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밀은 주장한다.
그 뒤로 여러 예시를 들지만, 무엇보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사회가 그에 대한 사법적 권한을 가진다는 밀의 주장인 것 같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예시로는 뭐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최근 우려되는 반중 시위인 것 같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중국인들이 많이 밀접해있는 대림동과 안산시에서 반중 집회를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명동이나 양꼬치 거리와 같은 상가 말집 지역에서도 집회를 하고 있다. 그들은 집회의 자유를 언급하며 자신들의 집회를 탄압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글쎄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 헌법이 이를 보호하고 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적인 자유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행하는 자유가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한다면 한번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명동을 비롯한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그 앞에서 반중 시위를 한다면 그들의 생계는 위협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중 집회에 대한 의아함도 있다. 2025년 양극화 인식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해 부정적 답변이 71.5%에 달한다고 한다. 북한이 79%이니 둘 다 싫다는 국민이 전체 국민의 71.5%라고 보면 된다. 이미 전 국민이 반중 정서가 깔려 있는데 굳이 반중 집회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예시를 들어볼 수 있다. 만약 필자가 오사카를 여행 갔는데, 상권 밀집 구역에서 한국인은 다 꺼지라고 시위를 하고 있다면 무서워서 그 공간을 갈 수 있겠는가? 경제 발전을 위해 관광을 많이 부르자라는 말과는 대비되는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론은 위 질문에 답을 주고 있다. 다 함께 생각해 볼 대목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