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열세 번째 장면

by 박재한
1897.10.12 대한제국 선포 (사진은 1907년 퇴위 후 태황제 예복차림) Emperador_Gojong_de_Corea_1897_color.jpg

<Emperador_Gojong_de_Corea_1897_color, 퍼블릭 도메인>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간 고종은 이 난국을 타파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언제까지 일국의 국왕이 외국의 공사관 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정국을 몰래 살펴봐야 하는지에 대한 고종의 근심은 그의 마음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좁아진 자신의 입지와 앞길을 알 수 없는 이 난국을 어떻게 타파할지 고민하던 고종은 끝내 방법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제국 선포였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민주주의의 거대한 담론 속에 하나둘씩 따라갔던 당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상황과는 정반대로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권위를 찾고자 했던 그의 판단과 행동에 작금의 우리는 대단한 의아함을 품고 비판한다. 하지만 당시의 고종의 입장에서 자신의 권위를 다시 옹립하고 왕권이 강화되어야지 국가가 강화된다는 그의 머리에서 나온 최적의 판단이 제국의 건설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그의 판단 자체가 아예 이해가 안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2일 양력 1/3 기사 /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왕후 민씨를 황후로,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하고 산호만세 등을 창하다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지냈다. 왕태자가 배참(陪參)하였다. 예를 끝내자 의정부 의정(議政府議政) 심순택(沈舜澤)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아뢰기를, "고유제(告由祭)를 지냈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하였다.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단(壇)에 올라 금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았다. 심순택이 나아가 12장문의 곤면을 성상께 입혀드리고 씌워 드렸다. 이어 옥새를 올리니 상이 두세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왕후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심순택이 백관을 거느리고 국궁(鞠躬), 삼무도(三舞蹈), 삼고두(三叩頭), 산호만세(山呼萬世), 산호만세(山呼萬世), 재산호만세(再山呼萬世)를 창하였다."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기에 황제에 오르기 전 원구단(환구단)을 지었고, 즉위하였을 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기록을 통해 추정된다. 다음날 고종 황제는 국호를 대한으로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의 입김이 가득 들어간 고종실록이기에 신뢰성에 항상 의심을 품으며 읽어야 하지만 이 대목에 있어서 만큼은 고종의 역사관을 잘 알 수 있는 것 같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3일 양력 2/5 기사 /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국호를 대한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하다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사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

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상제(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으며,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고쳐 썼다. (중략)

1897.10.12 대한제국 선포 (환구단과 황궁우) 공공누리 1유형.jpg

<환구단과 황궁우, 공공누리 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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