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897년 11월 20일
독립문 건립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열네 번째 장면

by 박재한
1898.01 독립문 민백-22836_서울 독립문.jpg

<독립문,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1 유형>

1900년경의 경성 전경.jpg

<1900년경 초반의 남대문 아래에서 바라본 한양, 퍼블릭 도메인>


지금도 남아 있는 독립문은 흔히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문으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독립문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던 곳이다. 영은문은 조선이 청을 상국으로 받들던 외교 질서를 상징하는 구조물이었고, 그 자체가 속방 의식과 사대의 시선을 드러내는 표식이기도 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임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정치인들이 느끼게 되었고, 세계에 우리가 자주국가임을 알리고자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영은문은 철거되고, 상징처럼 주초만 남았다. 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공원이 1897년 무렵 완공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독립’은 일본이 아니라 청으로부터의 독립, 즉 대한제국이 자주국가임을 표방한다는 뜻에 더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일제강점기가 되었을 때 독립문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는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독립문의 형상은 프랑스 개선문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이 자주 따라붙는다. 다만 독립문을 둘러싼 흥미는 외형보다 현판에 붙는다. 독립문 현판의 글씨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중에는 이완용이 썼다는 말도 섞여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런 ‘전승’의 형태로 오래 남는다.


학생들에게 독립문은 대개 암기 순서로 먼저 주어진다. 독립신문(1896년 4월) > 독립협회(1896년 7월) > 독립문(1897년)이라는 흐름이다. 이 순서가 익숙해질수록 원인과 맥락은 지워지고, 사건은 카드처럼 외워진다. 시험을 어렵게 내면 ‘독립협회가 독립신문과 독립문을 만들었다’는 식의 문장에 쉽게 속기도 한다. 나 역시 순서만 먼저 떠올리는 순간이 있다는 점에서, 주입식 교육이 역사를 이해로 바꾸는 방식인지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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