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한일병탄조약)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열아홉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10.08.29 경술국치를 상징하는 사진 퍼블릭도메인 (실제 사진은 1915.10.01 조선물산공진회 행사 사진).jpg

<1915년 10월 1일에 열린 조선물산공진회 행사 당시의 사진, 퍼블릭 도메인>


1910년 8월 29일 한국의 국권은 강탈당했다. 이제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간 자주적인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 이날을 기점으로 역사가 뒤흔들리게 된다. 경술국치의 여파는 오늘날 대한민국까지 이어진다. 35년간의 식민통치로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의 궁궐 및 문화유산, 풍습 등 모든 것이 사라지고 소실되었다. 일부 한국인들의 치열한 노력과 운동으로 우리 것이 전승되기는 하였지만, 경술국치가 있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풍습과 민간인들의 생활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경술국치가 있지 않았더라면 분단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역사의 IF(만약)은 없다지만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참담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순종실록의 마지막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순종실록 4권, 순종 3년 8월 29일 양력 2/2 기사 / 1910년 대한 융희(隆熙) 4년

일본국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다


황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維新)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善後策)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支離)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功效)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內省)하고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역(八域)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國勢)와 시의(時宜)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순종 4년 경술(1910) 7월 25일(병인, 양력 8월 29일 월요일) 맑음

○ 칙유(勅諭).

황제는 이르노라.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왕업(王業)을 이어 받들어 임어(臨御)한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신 정령(維新政令)에 관하여 속히 도모하고 여러모로 시험하여 힘써온 것이 일찍이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으되 줄곧 쌓여진 나약함이 고질을 이루고 피폐(疲弊)가 극도(極度)에 이르러 단시일 사이에 만회(挽回)할 조처를 바랄 수 없으니, 밤중에 우려(憂慮)가 되어 뒷갈망을 잘할 계책이 망연(茫然)한지라. 이대로 버려두어 더욱 지리하게 되면 결국에는 수습을 하지 못하는 데에 이르게 될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위탁하여 완전할 방법과 혁신(革新)의 공효(功效)를 이루게 하는 것만 못하겠다. 짐이 이에 구연(瞿然)히 안으로 반성하고, 확연(確然)히 스스로 판단하여 이에 한국의 통치권(統治權)을 종전부터 친근하고 신임(信任)하던 이웃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께 양여(讓與)하여 밖으로 동양(東洋)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도 민생(民生)을 보전케 하노니, 오직 그대 대소 신민(大小臣民)들은 나라의 형편과 시기의 적절함을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동요하지 말고, 각각 그 생업에 편안히 하며 일본 제국(日本帝國)의 문명 신정(文明新政)에 복종하여 모두 행복을 받도록 하라. 짐의 오늘 이 거조는 그대들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대들을 구활(救活)하자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 신민(臣民) 등은 짐의 이 뜻을 잘 체득하라.


참고로 위 사진은 경술국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에 일장기 두 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국권이 피탈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이 사진은 경술국치를 기념하여 일장기를 단 것이 아니다. 위 사진은 1915년 10월 1일에 열린 조선물산공진회 행사 당시의 사진이라고 한다. 다만 조선과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경복궁 근정전 앞에 걸린 일장기라는 점에서 국권피탈의 상징성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경술국치하면 떠오르는 사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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