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1945년 12월 27일
신탁통치 반대운동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서른세 번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45.12 신탁통치 반대운동 민백-27374_신탁통치 반대 데모 / 미소군정기.jpg

<반탁운동,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1 유형>


1945년 12월 한반도를 운명을 정하기 위해 미국, 영국, 소련의 외무장관(외교부장관)이 모스크바에 모여 회의를 하였다. (사실 여운형의 건국 준비위원회가 내정을 통치하려고 하였으나, 38선 이남으로 들어온 미군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기는 하였다.) (이는 우리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라고 한다.) 소련의 외무장관은 한반도를 즉각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미국은 한반도를 일정기간 신탁통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과 소련의 공동 운영 기구인 미소공동위원회를 한반도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보고 소련은 좋고 미국이 나쁜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소련의 입장에서는 한국인의 정치적 성향이 사회주의가 우세하였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독립시켜 선거를 치러봤자 사회주의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고, 이는 곧 친소련 성향의 정부가 세워질 것이라는 계산 하에 즉각 독립을 주장한 것이고, 반면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자본주의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국의 '국익'에 의해 판단된 결과물인 것이다.


이 소식이 한반도에 그대로 전해졌다면 한반도는 아마 반미 성향으로 전국토를 뒤덮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걸 뜻밖에 오보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다. 이른바 동아일보 신탁통치 오보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이 즉각 독립을,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속보를 전국에 뿌리면서 시작되었다.


대중과 독립운동가들은 분개했다. 이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즉각 독립과 신탁통치 반대를 외치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더불어 사회주의 타도와 좌익 세력을 반민족 세력으로 동일시하는 감정이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신탁통치를 주장하거나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세력을 모두 친일파 이상의 반민족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이념 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신탁통치를 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미소공동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신탁통치가 3년간 시행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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