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1950년 6월 26일
보도연맹 학살사건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2』서른아홉 번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50.06.26 (1950년 한해) 보도연맹 학살 사건 [위키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jpg

<보도연맹 학살사건, 퍼블릭 도메인>


1949년 4월 즈음 정부는 보도연맹을 만들게 된다. 정확한 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인데 국민보도연맹을 만든 취지는 국내 좌익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서 전향한 사람들에 한해 보도연맹에 가입시켜 사상을 개조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운영되었다. (보도연맹사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국민보도연맹의 간부들은 검사와 경찰로 구성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했기 때문에 사실상 관변단체에 가까웠다. 또한 반공사상을 기치로 삼아 사상을 전향시키는 데에 대단히 많은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이러한 성향이 굉장히 강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좌익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대거 가입하게 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는 말단 행정기관에게 할당된 수가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도 강제로 가입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연맹에 가입하면 좌익 세력에 가담한 이력을 용서하고 밀가루와 같은 양식을 준다는 회유도 있다는 기록이 있었다. 뭐 이런 식으로 조직이 점점 커졌는데, 문제는 다음에 생긴다.


국민보도연맹이 창립된 지 1년 즈음이 된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모조리 소집하고 구금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북한군이 점점 남하함에 따라 보도연맹원들을 모조리 데리고 후퇴를 할 수 없었던 국군은 이들을 집단 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어떠한 법적 처벌 없이 즉결처형으로 집행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망자 수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대게 20만 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사상개조를 위해 가입시킨 국민들을 향해 즉결처형함으로써, 국가의 의무를 저버린 국가폭력의 비극을 제대로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사실상 예비적 살인에 가깝다. 북한군에 가담할 것을 예상하고 살인을 한 것이니 말이다.) (보도연맹사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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