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끊이지 않는 녀석
"야, 너는 한국사회에선 살기 힘든 성격이다. 오히려 미국사회에 더 잘 맞을걸."
21살 때 대학에서 전공교수님께 들었던 말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 말씀의 뜻을 절반 정도만 이해했다. 앞부분은 내가 한국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얼추 무슨 뜻인지 와닿았지만, 뒷부분은 내가 미국사회를 경험해보지 않아 판단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뜻은 무엇이었을까?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떠올리며 곱씹어보는 토픽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물음표 살인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왜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른들께는 항상 공손해야지. - 왜요?
공룡은 이미 멸종한지 오래란다. - 왜요?
어른한테 말대꾸하지 마! - 왜요?
모든 상황에서 왜요무새가 된 건 아니었지만, 난 항상 호기심이 많았고 내가 해답을 얻으리라 기대되는 존재들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 대상이 부모님뿐이었다.
친절한 답이 돌아올 때도 있었지만, 바쁜 와중에 질문하면 그만 좀 물어보라거나 말대꾸 좀 그만하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내 질문욕구를 채우기 위해선 또다른 세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확장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챗gpt를 상대하는 것처럼 선생님들께 질문을 많이 했다.
그 주제는 한정되지 않았다. 내가 관심있는 것, 궁금한 것이 팝팝 튀어올랐다면 그저 물어보는 것이다.
이런 기질은 초등학교 때는 그저 그랬지만, 중학교부터 폭발하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났을 때 궁금한 게 있으면 복도로 쫓아나가 붙잡고 물어보곤 했다.
물론 반항적인 사춘기였기에 질문의 형태가 곱지 않았던 적도 많다. 선생님들과 논쟁을 한 적도 정말 많았다.
내 기준에서 비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면 즉각 문제제기를 하고 언쟁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한번은 가정 선생님과도 방과후 교실에서 길게 토론을 했던 기억도 있다.
혓바닥이 멈추지 않고 언쟁이 꽤 길게 되서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슬슬 서로의 견해가 좁혀져가면서
논쟁을 정리하고 교실 밖으로 나왔었다.
언쟁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선생님이 '너같은 녀석 피곤하다'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그때 내가 했던 멘트는 이러했다.
"그래도 이런 논쟁을 통해 우리가 성장하는 것 아닐까요."
그때 그 노을빛이 얼굴에 내려앉은 선생님이 지어보이던 미소가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선생님은 잠깐 말없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보셨는데, 말씀이 없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게 아마 또 좋은 촉매가 되지 않았을까. 토론과 대화,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강한 신념을 장착하고 있던 중2병의 나에게 그런 선생님의 미소는 확신을 주었던 것 같다. 좋은 어른이 보기에도 이 길이 괜찮은 길이구나 라고.
그래서 이후에도 점점 질문이 늘어갔다. 역사 선생님에게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역사들과 그것이 어떤 입장에서 쓰여진 것들인지를 물어보고, 과학 선생님에게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물어보기도 했다. 저 불확정성의 원리 중3 당시에 진짜 혼자서는 이해가 어려워서 물어본 거였는데, 과학 선생님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며 설명을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ㅋㅋㅋ
이후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들어갔고, 과는 생뚱맞은 심리학과를 들어갔다.
꿈은 이미 중2때부터 웹툰작가라고 정해놨지만 정작 만화는 그리지도 않고 과는 심리학과가 재밌어보여서 픽했다. 과는 나름 엉뚱한 과를 택했지만 그곳에 들어가서도 난 여전했다.
강의 중에 궁금한 게 생기면 질문해야했다. 그게 아무리 쓸데없어보이고, 정답같지 않아보이고, 수준높지 않아보여도 상관없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었으니까.
난 내 궁금증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한 전공교수님.
교수님은 강의 첫 시작부터 정말 유쾌한 분이셨다. 강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면서 한가지 원칙을 내세우셨다.
"내 강의에서는 질문을 최대한 많이 할 것."
교수님은 한국의 교육현장에 대한 아쉬움을 먼저 토로하셨다. 학생들이 너무 질문을 안한다는 것.
다들 각자의 이유로 질문이란 행위에 무관심하거나, 회피하거나,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수님은 그런 걸 바꿔보고자 해당 강의에서만큼은 학생들의 질문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하셨다.
가끔은 아예 질문 할당량을 만들어서 수강생들이 질문 개수를 채우지 못하면 강의를 안끝내주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이 내겐 신박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은 내 질문을 귀찮아했다. 때로는 말대꾸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쟤는 애가 대체 왜 저래."
그저 어른이 시키면 따르는 것이 도리이거늘 왜 계속 의문을 품고 말대꾸를 하고 자기주장을 하느냐고.
그런 소리를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다.
그 숨통을 그나마 트여준 것이 초, 중, 고등학교에서 만난 몇몇 좋은 선생님들이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그 교수님을 만난 순간, 많은 것들이 채워졌다.
질문하라니 너무 좋잖아...
진짜 쓸데없는 호기심 강력한 질문, 어쩌면 조금 버릇없을 수도 있는 농담성 질문, 나름 진지하게 던지는 질문 등등 다양했다. 물론 현재 강의와 아예 무관한 뜬구름 질문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보통 강의를 들으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팍 튀어오른 질문들이었다.
근데 교수님도 그런 나를 꽤 좋게 보셨던 것 같다. 교수님에게 좀 '신기한 놈'으로 찍혀버려서 장난도 걸리고 뵐 때마다 여러 대화를 나눴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어느날 튀어나온 얘기.
"야, 너는 한국사회에선 살기 힘든 성격이다. 오히려 미국사회에 더 잘 맞을걸."
이게 나를 흠잡거나, 저주하거나, 욕하는 말씀은 당연히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예의범절을 좀 크게 신경안쓰고 격의없이 다가가는 면도 있고,
돌려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꽂아넣는 화법도 많으며,
기본적으로 질문을 많이 하고 생뚱맞은 소리도 그냥 막 내뱉는다.
교수님은 내 이런 면을 1년동안 보면서 기질에 대한 평가를 하신 게 아닐까.
나는 미국사회를 겪어본 적이 없다. 살아보기는 커녕 여행조차도 안가봤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29년 평생을 살아봤다.
토종 한국인으로서 살면서 내가 경험해 온 한국인들의 특성은 이러했다.
- 수업에서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 직설적인 표현을 싫어하고 돌려서 말한다
-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쓴다
- 정답인지 아닌지를 중요시한다
재밌게도 난 위의 4가지 특성과 거리가 먼, 반골기질 넘치는 돌연변이다.
이게 뭐 내가 특별하다거나 잘났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난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이 있고 그 길을 닦아왔다. 그러다보니 나는 저것들과는 거리가 멀어졌을 뿐이다.
교수님의 말씀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의 기질은 어떻고,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이런 쪽이 더 발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한국인들의 그 일반적인 특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요즘들어 미국인 타일러의 미국 이야기를 듣다보니 미국적 사고방식과 구조에 대해 조금씩 이해가 되고 있는데, 동시에 최근 한국사회에서 터지는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한국의 특성에서 기인한 병폐라는 생각도 함께 들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더더욱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나라는 사람의 기질을 파악했다면,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을 던졌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처럼 이제는 이 물음을 던져야 한다.
다음엔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지 않을까 하며 이만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