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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01. 2021

우상 숭배

외딴방에 차린 체육관

사진 출처: 언더아머 공식 온라인 스토어




믿음은 증거가 없으면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믿음이 없이는 무언갈 해보고자 하는 동기도 시작되지 않는다.


  동기의 유발과 유지를 위해서 제단을 쌓고 기도할 숭배의 대상이 필요했다. 기독교 재단의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아침마다 찬송가를 부르고 점심을 먹기 전에 항상 감사 기도를 올렸다. 만약 마음속에 믿음의 씨앗이 있었다면 진즉에 싹을 틔웠어야 한다. 그러나 중학교로 진학하여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신앙이 깊이를 더하기는커녕 완전히 마음속에 유폐되고 잊혀갔다. 6년 간의 주입으로도 싹이 트지 않은 걸 보니 숭배의 대상이 십자가는 아닌 게 확실하다. 기독교만큼 오래 테스트를 해본 건 아니지만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황금 불상이건 성모 마리아상이건 모스크건 마찬가지였다. 어느 사원을 가도 누군가가 만들어 낸 상징물과 그것을 따르는 신자들만이 있을 뿐 믿음이 없는 자에게 직접 통하는 계시나 증거 같은 건 없다.


  차라리 그보다는 고등학교 시절 mp3 플레이어로 즐겨 듣던 해외의 팝 가수, 그리고 나와 터울이 크지 않았던 국어 선생님이 우상이라 할 만하다. 외국어라 가사 번역 없이는 뜻도 몰랐지만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르는 발라드에 학업의 고됨을 위로받았고,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진이나 동영상 자료를 찾아보면서 다음 날의 공부를 위한 힘을 얻곤 했다. 우리나라 가수였다면 콘서트라도 한번 갔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 내한 콘서트를 연 적도, 열 계획도 없는 가수라 음반, 사진집 따위를 사 모으는 것이 덕질의 한계였다. 전부 돈의 대가긴 해도 어쨌든 음반, 사진집, 그리고 인터넷 상의 무수한 사진과 기사와 동영상은 무엇보다도 확실한 믿음의 증거였다.


  한편,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안 되어 학교로 부임한 선생님은 해당 교과를 넘어서 대학 진학에 대한 동기를 강하게 만들어 준 분이었다. 그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근무하던 보통의 선생님들과 거의 모든 면에서 달랐다. 학생들과의 소통 방식이 유연했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학생들을 지도하고자 하였고, 자신이 겪은 세상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해 주었다. 다소 지루한 교과서 내용과 상관없이 나는 일 년 내내 완전히 집중하여 학습에 임할 수 있었고 교과의 완벽한 성적으로 그분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이외에도 미술 시간에 캐리커쳐를 한다든지 친구들과 돈을 모아 산 케이크로 생일을 축하해 드리는 등 인정을 받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아니, 그게 노력이라는 자각도 없었다. 일주일에 몇 번 교실에서 수업으로 만나고 지나가다가 대화를 나누고 하는 일상이 기쁨이요, 충만한 동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뭇 학생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을 만큼 외모가 출중하다거나 화술이 남달랐던 바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그만큼 내가 뭔가 해보고자 했던 동기가 있었던 건, 성별이나 직위를 떠나 사람 자체에게 매력을 느낀 게 아니었나 한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서 보더라도 내게 선한 영향력을 가장 강하게 전한 사람이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면서, 그리고 내 가정을 꾸리면서 나도 고등학교 시절의 어른들처럼 뭐든 현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는 게 몸에 배었다.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지금의 여유가 지속된다는 데에서 오는 안주, 타성, 관성을 부정할 수 없다. 10대처럼 무엇인가를 순수하게 믿기가 어렵고 20대처럼 동기를 갖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동기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나아갈 만한 대상을 찾다가 발견한 게 파워리프팅 프로그램이었고, 정확히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그쪽 방면에서 우상이 될 만한 드웨인 존슨이 떠올랐다. 전직 프로레슬러에,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배우라는 타이틀만 해도 우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나는 그보다는 'Just bring it!'이라는 짧고 분명한 메시지, 수도사와 같이 웨이트 트레이닝에 전념하는 자세에 매료되었다.


  나와 그는 타고난 것이 다르기에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그 덩치를 쫓아갈 수 없고, 과감한 도전정신을 반만큼이라도 흉내 내지 못할 것임을 안다. 그래도 내 경험 상 물건보다는 사람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통해 동기를 부여받는 게 낫다는 걸 안다. 일단 동기가 부여되기만 하면 아무리 조그만 발전이라도 이루게 된다.


 만약 우상이 변치 않고 한자리에 그대로 있어준다면, 나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나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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