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고 두드리고 담금질하라
외딴방에 차린 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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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일이 불로써 쇳덩이를 벼리는 일이라면 웨이트 트레이닝은 쇳덩이로써 몸과 마음을 벼리는 일이라 하겠다.
성격도 생김새도 터프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 여기 있다. 타고난 성품이 그리 시원스럽지 못했고, 지금보다 터프했던 90년대를 지나오면서 경계가 조금씩은 트였으나 크게 확장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순종적이었으되 영 사내답지 못한 점이 아쉬운 아들이었다.
특히 밖에서 누군가에게 한 대라도 얻어맞거나 돈을 빼앗기고 돌아온 날이면, 아버지는 가해자를 탓하는 말 뒤에 으레 "그런데 너도 그놈에게 한 방쯤은 갈겨 줬어야지."라는 주문을 덧붙였다.
그 주문처럼 나도 내 것을 빼앗아간 놈의 얼굴에 한 방쯤은 갈길 수 있는 강단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덩치만 컸지 마음의 골격은 허약했기에 그건 아무리 외어도 효험이라곤 없는 주문呪文이었다. 유약한 장남은 꿔준 돈을 받아야 될 사람 앞에서 몹시 아첨을 떨었고, 부당한 요구를 한 자에게 부당하다는 한 마디를 꺼내기 위해 꽁꽁 용을 써야 했다.
비교적 평온했던 고교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었고, 그다지 회상하고 싶지 않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내 것을 힘으로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 보기도 드물어졌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마음의 터프함은 덩치와 나이 듦에 비례해서 자라나지 않았다. 아직도 내 안에는 물건을 빌려가 놓고도 뻔뻔하게 나오는 동네 친구 앞에서 떨리는 목청을 가다듬어야만 하는 못난 어린이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 유약한 어린이를 내몰 수 없음을 잘 안다. 타고난 바를 수긍하고 긍정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수긍하고 긍정할 수 있을까.
어린이를 다그치는 대신 나는 그를 데리고 바벨과 플레이트, 벤치가 놓인 방으로 들어간다. 여긴 가족들로부터 분리된 맨 케이브man cave이자 갑옷을 단조하는 대장간이다.
황소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와 트레이닝용 반바지로 갈아입는다. 스트레칭 밴드를 잡아늘이면서 벽에 걸린 드웨인 존슨을 바라본다. WWE 전설 속 거인은 언제나 강인하고, 도전적이며, 멈추지 않는다. 말 없는 격려를 받으며 준비 운동을 마치고 기구 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이어폰을 꽂고 차가운 바벨을 감아쥐니 잡스런 것들이 뇌리에서 떠나간다. 내 마음과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갑옷이 아직 한참 무르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쉽게 뚫리지 않는 갑옷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불에 달구고 두드리고 담금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