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마귀소년 Nov 08. 2021

달구고 두드리고 담금질하라

외딴방에 차린 체육관

사진 출처: www.pixabay.com




  대장일이 불로써 쇳덩이를 벼리는 일이라면 웨이트 트레이닝은 쇳덩이로써 몸과 마음을 벼리는 일이라 하겠다.


  성격도 생김새도 터프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 여기 있다. 타고난 성품이 그리 시원스럽지 못했고, 지금보다 터프했던 90년대를 지나오면서 경계가 조금씩은 트였으나 크게 확장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순종적이었으되  사내답지 못한 점이 아쉬운 아들이었다.


  특히 밖에서 누군가에게 한 대라도 얻어맞거나 돈을 빼앗기고 돌아온 날이면, 아버지는 가해자를 탓하는 말 뒤에 으레 "그런데 너도 그놈에게 한 방쯤은 갈겨 줬어야지."라는 주문을 덧붙였다.  


  그 주문처럼 나도 내 것을 빼앗아간 놈의 얼굴에 한 방쯤은 갈길 수 있는 강단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덩치만 컸지 마음의 골격은 허약했기에 그건 아무리 외어도 효험이라곤 없는 주문呪文이었다. 유약한 장남은 꿔준 돈을 받아야 될 사람 앞에서 몹시 아첨을 떨었고, 부당한 요구를 한 자에게 부당하다는 한 마디를 꺼내기 위해 꽁꽁 용을 써야 했다.


  비교적 평온했던 고교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었고, 그다지 회상하고 싶지 않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내 것을 힘으로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 보기도 드물어졌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마음의 터프함은 덩치와 나이 듦에 비례해서 자라나지 않았다. 아직도 내 안에는 물건을 빌려가 놓고도 뻔뻔하게 나오는 동네 친구 앞에서 떨리는 목청을 가다듬어야만 하는 못난 어린이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 유약한 어린이를 내몰 수 없음을 잘 안다. 타고난 바를 수긍하고 긍정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수긍하고 긍정할 수 있을까.  


  어린이를 다그치는 대신 나는 그를 데리고 바벨과 플레이트, 벤치가 놓인 방으로 들어간다. 여긴 가족들로부터 분리된 맨 케이브man cave이자 갑옷을 단조하는 대장간이다.


  황소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와 트레이닝용 반바지로 갈아입는다. 스트레칭 밴드를 잡아늘이면서 벽에 걸린 드웨인 존슨바라본다. WWE 전설 속 거인은 언제나 강인하고, 도전적이며, 멈추지 않는다. 말 없는 격려를 받으며 준비 운동을 마치고 기구 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이어폰을 꽂고 차가운 바벨을 감아쥐니 잡스런 것들이 뇌리에서 떠나간다. 마음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갑옷이 아직 한참 무르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쉽게 뚫리지 않는 갑옷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불에 달구고 두드리고 담금질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상 숭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