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를 보낸 옛 동네를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내 마음은, 사찰 터를 찾아가 주춧돌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승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옛 동네를 둘러볼 만큼 둘러본 후 근처 주차장으로 걸어나왔다.
2시간분의 요금을 치르고 주차장에서 나와 차를 모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 동네는 30여 년 만에 살던 사람이 죄다 떠나버렸고 집은 모조리 헐리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는 쉼 없이 외면과 내면이 변모했다. 현재의 나는 30여 년 전, 20여 년 전, 10여 년 전의 나와는 꽤나 다른 인간이 되었다.
역시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교차로에서 멈춰 서서 적색등을 골똘히 쳐다보며 앞으로를 생각한다. 뭐든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로 항해해야 하는가? 장강후랑추전랑. 그저 뒤 물결이 와서 밀어내는 대로 떠나가고, 새 사람이 올 때까지 뱃전에 드러누워 있을 것인가?
이윽고 신호가 녹색등으로 바뀌고, 맨 앞 줄에 서 있던 나는 뒤 차들에게 밀려나듯 서둘러 출발한다. 길거리에서 언제까지나 달릴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으니 기항지는 집이다. 후문 게이트를 통과하여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내린다.
한산한 지하주차장을 뚜벅뚜벅 걸어 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잠시 후 9층에 도착한다. 현관문의 도어락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지나가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구름이 유유히 떠가는 하늘을 보며 아까 표시해 둔 뱃전의 칼자국을 더듬는다.
칼은 온데간데 없으니 칼자국을 만지면서 생각을 이어간다. 학업-입시-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지난 20년은 늘 스케줄에 의해 기항지가 정해져 있었다. 분기점까지 항해할 실력을 키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을 뿐이다. 부모는 철갑이 되어 어떤 격랑과 암초도 날 대신해 막아주었다. 그런 수고와 은혜로움 덕분에 나는 돛대가 부러져 표류하지도 연료가 떨어져 곤경을 겪지도 아니하고 기항지마다 제때 도착할 수 있었다.
부모님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과, 학업 성취를 인정해주는 사회 시스템의 도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 명의로 된 배를 마련했고 가족도 생겼다.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지 새롭게 정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제행무상 말고도 본질적인 가치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효, 인의예지, 부부애, 자애, 자기 수양, 공동선과 같은 것들. 인간 문명에 의해 태동하고 다듬어지고 전승해 온 덕목들 중 일부는 시간의 흐름에 퇴색하고 일부는 유폐될지언정 소멸하지는 않을거라고 믿고 싶다.
그것들이 발하는 빛 없이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서 항로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본질적 가치들이 우리를 인도하는 작은별이자 마음 놓고 배를 정박할 기항지가 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