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음악 어플을 자동차에 연동해 재즈를 듣기 시작했다. 어떠한 계시라 할 것도 없이, 어느 날부터 그냥 듣는다.
자동차로 일터까지 출퇴근하는 거리는 15분에서 20분 사이. 익은 길이기에 운전만 하면서 가기엔 좀 심심하다. 평상시엔 절대 트는 법이 없지만 운전할 땐 만만한 게 라디오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넘나들면서 이 방송 조금, 저 방송 조금 듣곤 했다. 학생 땐 디제이가 사연을 읽어주고 가요나 팝을 틀어주는 방송을 꾸준히 들었지만, 지금은 집중이 안 된다. 들을 만하면 광고가 끼어드는 게 싫다.노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꺼버리는 통에 김이 샐 때도 많다.
또, 청취자들이 보낸 사연을 읽고 디제이가 공감과 위로를 해 주는 일련의 행위가 너절하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 내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이런저런 인생사를 듣고 피상적인 답변을 즉석에서 떠올려 응답하는 일 말이다.
인생엔 답이란 게 없고 그래서 즉문즉답이 얼마나 어려운데 심지어 날마다 그런 걸 한다. 잠시라도 말이 멈추면 안 되는 라디오의 숙명 때문에 값싼 말의 대잔치가 열린다.
어렸을 때는 그 취향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던 클래식 음악 방송과 시사보도 방송이 차라리 낫다. 그 둘은 중간 광고도 적고,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마저도 영 취향에 안 맞는 곡이나 사람이 나올 때 건너뛰는 게 안되니 답답할 때는 있지만.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재즈 음악이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노래가 없는 계열이라면 뉴에이지나 클래식이 차라리 나았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취향이란 것도 자꾸자꾸 변하나 보다.
재즈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들. 피아노가 있는 바, 낮은 톤으로 느릿느릿 노래를 부르는 여성 보컬, 어두운 조명, 쩔걱쩔걱 맞부딪는 잔과 식기 소리, 낮게 웅성이는 사람들, 트럼펫을 부는 루이스 암스트롱 정도다. 내가 생각해도 피상의 극치다.
어플리케이션에서 추천하는 리스트를 담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듣고 있다 보면 재즈가 여러 상황에 참 잘 어울리는 장르란 생각이 든다. 가령 카페에서 공부할 때,주말 오후 커피를 내리면서, 아니면 식탁 의자에 앉아 블로그를 쓰면서. 그리고 퇴근길 자동차 안에서.
특히 다소 느린 템포의 재즈는 배경에 깔리는 음악으로서 일을 방해하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켜 준다. 이 '진정 효과'야말로 운전자에게 꼭 필요한 바다. 차를 몰고 도로에 나갔을 땐 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천천히 달려야 탈이 나지 않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회사/집에 빨리 가고자 하는 심리가 계속해서 조급증을 부추긴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조급하게 밟아대서 가든, 적당한 속도로 가든 고작 5분 내외의 차이일 뿐임을 아는데도 말이다. 거기에다 제멋대로 운전하는 도로의 무법자(택시, 오토바이, 튜닝카)를 연달아 만나게 되면 냉정함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어젠 퇴근하는 길에 시동을 걸고 곧장 재즈를 틀어놓았다. 거리의 템포보다 한참은 느린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착 가라앉히고 온갖 자잘한 상념들을 잠시 잊게 해 준다. 노란불 신호에서 무리하게 내달리지 않고 속도를 줄이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무법자들의 '지시등 켜지 않고 끼어들기'와 '차선 물고 달리기', '횡단보도에서 빵빵거리기' 같은 추한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냉정을 유지했다. 5~6곡쯤 들었을 때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고 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곡이 끝나고 시동을 끈 다음 짐을 챙겨 내린다. 지하주차장을 걸어가는마음이 홀가분하다. 하루 동안 겪은 불행과 질투와 실랑이와 거짓말 같은 게 무척이나 작아졌음을 느낀다. 난 그것들을 한데 뭉쳐서 쓰레기통에 탁탁 털어버린 뒤, 불씨를 댕겨 소각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집으로 올라가는 동안 가족들의 얼굴이 그립다. 따뜻하고 푸짐한 저녁을 먹을 기대로 마음이 부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