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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11. 2021

시민들의 서사시를 읽고 싶다

사회 시스템은 선량한 시민 편향적이어야 한다

사진 출처: www.pixabay.com




  심심하면 교통 사고와 관련된 블랙박스 영상을 찾아본다. 영상은 경력에 상관 없이 운전에 아주 훌륭한 교보재로써 기능한다. 때로는 운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인생과 사회의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된다.


  블랙박스 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보면 보통 조회 수가 수천 회 이상이다.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이른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의 채널은 인기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영상에는 내가 도로에서 만난 것보다 한참은 더 황당하고 무모하고 괴이한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고를 일으킨다.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사람도 생긴다.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제보된 영상에서는 그런 상식을 기대할 수 없다. 가해자가 되려 피해자인 척 성을 내고 피해자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일도 있다.


  보통은 피해자 쪽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유튜브 채널에 제보한 영상이기에, 영상 댓글에서는 누가누가 가해자를 더 신랄하게 비난하는지 경연을 벌이는 중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위로하고, 때로는 직접 법률 상의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블랙박스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공권력에 대해 조금씩은 불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권력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속도가 일개 유튜브 채널보다 한참 느리고, 또 가해자에게 무르다는 혐의를 갖고 있는 게 보인다.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가해자를 박제해서 조리돌림하는 게 응분의 대가라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요컨대 법원권근이랄까.


  어디 유튜브뿐이랴. 만화, 영화, 드라마, 웹소설 등 장르를 불문하고 무법자를 처절하게 응징하는 내용이 큰 인기를 끈다. 사람들은 껍데기만 달리하는 참교육/사이다물에 열광한다. 주인공이 너무 선하면 사고와 행동에 제약이 많아지니 이제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 과정을 무시하는 다크 히어로가 더 각광받는다.  


  도로 위의 무법자들을 그런 식으로 단죄하는 내용도 하나쯤은 생각난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한 씬이다. 주인공은 차를 몰고 가다가 도로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자들을 만난다. 보통 사람 같으면 더러워서 피하거나 일방적으로 봉변을 당할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침착하게 차를 세우고, 성인 남자 두 명을 주먹과 발길질로 손쉽게 제압한다. 거기에다 상대방의 키를 빼앗아 강물에 힘껏 던져버리면서 상황 종료.


  그 씬은 아마도 참교육 운운하는 제목으로 편집되어 유튜브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조회수도 높을 것이다. 정해진 룰을 어기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은 응징당해야 마땅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룰 게 뻔하다. 웬만해서는 댓글을 달지 않는 나도 마찬가지의 마음이다. 그러나 응징의 주체와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 한다.


  나는 히어로가 판치는 현실을 원하지 않는다. 히어로가 등장할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기보다는 각자가 용기와 협력을 발휘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히어로에 의해 감시 받거나 판단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팔다리를 뻗어 각자가 원하는 목적지로 헤엄쳐 감이 자유롭기를 바란다.


  사회 시스템은 선량한 시민 편향적이어야 한다.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사람은 지금보다 한층 너그럽게 보듬어주고, 그것을 짓밟는 자는 지금보다 더욱 엄정하게 처벌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세상은 넓고 영웅은 일손이 부족하다. 마른 하늘에서 사이다가 내리기만 기다리다 목이 말라 죽을 수는 없다. 목이 마른 자가 직접 우물을 파야 한다.


사회 시스템의 든든한 비호 아래, 일반 시민들이 써내려가는 서사시가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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