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넷플릭스로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시청했다. 권투 글러브를 외피로 두른 인생 이야기다. 외피와 내피의 결합이 참으로 적절했다. 관록의 배우들이 툭툭 던지는 대사들이 가슴으로 묵직하게 들어왔다.
영화를 본지 며칠이 지나고 감동의 여운이 제법 가셨다. 보통의 영화는 이쯤 되면 장기 기억의 썰물을 타고 모조리 빠져나간다. 썰물이 한 차례 지나갔을 법한 시간인데, 대사 하나가 바닥에 눌러붙어 있다. 글로 전이시킬 만한 무게감이다.
Always protect yourself.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땐 부모의 품에 안겨 있지만, 나이가 들면 부모의 품에서 내려와야 한다. 누구든지 기는 법과 걸음마를 배워서, 언젠간 제 발로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 누구에게도 일방적으로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서야 한다.
영화는 자립을 위한 주인공의처절한 분투기를 보여준다. 세상에 올 때부터 죽을 고비를 넘겼고, 못난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장녀만 믿고 있는 기생충들의 이빨에 갉히다가 서른이 가까워서야 도시로 이주했다. 식당 일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면서 저녁에는 무작정 체육관을 찾아가 샌드백을 친다. 트레이닝 요청을 거부하던 관장으로부터 어렵사리 허락을 받고 주인공이 권투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 관장은 이렇게 일러주었다.
항상 너 자신을 보호해라.
일차적으론 복서의 기본 자세를 말한 것이겠지만, 폭을 조금만 넓혀보면 이건 인생의 정수다. 그것도 몇 십 년에 걸친 인생의 피와 눈물이 강하게 응축되어 단 하나의 음절도 빼놓을 수 없는 정수 말이다. 그만한 굴곡을 거치지 않은 초심자에게는 그저 예사로운 조언으로 지나갈 만큼, 독특한 수사가 없다.
주인공은 맨주먹과 맨발로 땅을 딛고 막 일어선 참이었다. 작은 전투의 연이은 승리만으로는 아직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제것으로 체득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있는 힘껏 강하게 세상에 부딪힐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할 정도로 도전적이었다.
그녀가 좌절을 겪는 영화의 후반부는 지나치게 극적인 한편 꽤나 현실적이라는 역설을 느끼게 한다.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난 지금, 나는 주인공에게서 감각적인 부분을 모두 배제하고 관념적인 부분만을 똑 떼내서 이리저리 불빛에 비추고 살펴보는 중이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두껍고, 낯설고, 때때로 횡액이 닥쳐오는 링에 불안하게 발을 딛고 서 있다.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어제까지 기다가 오늘 걷는 법을 막 배운 참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링에 올라 있었다. 나는 계약서에 싸우겠다는 서명을 한 기억이 없다. 이건 애초에 계약이 맺어지지 않은 부당한 시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