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은 간신히 눈뜬 젖먹이를 둘러싼 강보였다. 위태한 첫 걸음마를 뒤에서 북돋는 손이었다. 어린이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행실을 서술한 학습서였다. 담벼락 너머의 존재들, 국가라는 울타리, 대자연의 질서에 이르는 데까지 명료하게 비추는 햇살이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어서는 오르간 반주에 맞춰 목청껏 합창하는 기쁨을 알게 했다. 기쁨만이 아니라 가슴 속의 어떤 감정이라도 밖으로 끄집어냄으로써 고양하거나 위무할 수 있음을 가르쳤다. 마음 가는 대로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무엇이든 뺄 수 있는 주머니는 얼마나 요긴한가. 교내 합창단과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간 친구들처럼 열렬히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좋아했다.
불운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둘러싼 세계의 룰은 점점 엄격하게 바뀌어가-그것에게마저 예외 없이 적용되기에 이른다. 그것들은 표현보다는 평가의 수단이 되고 말았다. 떠들썩한 합창은 극히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만 허락되었으며, 선생님과 동무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독창도 가급적 삼가야 함을 새로 배웠다.
그맘때부터 하소연을 포기하고 주머니에 MP3를 품고 다니기 시작했다. 교우 관계든 입시든 군 복무든 직장에서든...세상이지긋지긋하고 사람에게진력이 날 때면기대는 버팀목이 되어 줬다.
나무에 기대어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그것들이 흘러들어와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인다. 노래 주머니는 처음엔 좁쌀만 하다가 밤톨만큼 커졌다 싶다가 이내 혹처럼 빵빵하게 불어난다. 주머니 안에서 그것들이 마구 뒤섞여 요동치는 게 느껴지면 더 이상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이면 교문을 빠져나와 대나무숲을 찾아가곤 했다. 숲에는 나같은 사람을 위한 부스가 마련돼 있다. 홀로 부스로 들어가 문을 달깍 닫아놓는다. 정신을 쏙 빼놓는 바깥의 전자 음향이 노랫소리를 흔적도 없이 지워준다.
한번 들어가면 끝장을보았다. 처음에는 잔잔한 발라드로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고함에 가까운 노래를 한다. 돈을 있는 대로 다 쓰고는 밖으로 나와 주머닐 더듬어보면홀쭉하게 비어 있어마음까지후련했다.
가끔은 주체되지 않는 감정들을 가지고 내 시와 내 노래를 짓는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시작하여 졸업할 때까지 단절 없이 써내려간 일기장이 그런 쪽으로는 첫째요, 그 뒤로는 부모님이며 선생님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써내려간 다이어리가 둘째,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을 취사 선택하는 신기능이 탑재된 싸이월드 일기장이 셋째가 된다. 그중에서 여태 잃지 않은 유일한 것은 첫 번째 일기장으로서 어설프게 급조한 동시며 노랫말 따위가 수십 편쯤 실려 있다.
나머지 둘째와 셋째는 분명 어린 날의 소산이었을지라도 차마 세상 밖에 밝히기 부끄러운 것들로서 진작 내 손으로 불살라 버리었다. 그것들은 수레바퀴 아래서 굴욕과 우울감에 허덕이다가 깔려 죽지 않으려는 자의 저항이긴 했으나, 어떤 사상의 뒷받침도 없이 그저 날카로운 말뿐이었다.
욕보다도 더 뾰족하게 벼린 말들이 향하는 곳도 엉뚱하기 그지 없었다. 말들은 높은 곳에서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자들이나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이 아니라, 고작 나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시스템의 하수인이나, 그도 아니면 나와 같은 유類의 고통에 허덕이는 동료들만 골라 겨냥했던 것이다. 그것들은 시도 노래도 무엇도 아니었다.
감정과 노래의 전환은 한때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끈끈한 신뢰를 먼저 저버린 것은 나였다. 아내의 사랑을 얻기 위한 구애가 거의 끝물이었다. 결혼을 하고 집을 얻고 삶이 그런 대로 먹고 살 만해지자 느닷없이 찾아온 권태기처럼 그냥 노래를 듣고 싶지 않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최애 가수의 신보, 음악 어플, 음악 방송, 노래방이 전부 귓전에 닿지 않을 만큼 밀려났다.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이 긴요치 않다는 판단을 내린 다음 노래집과 MP3, CD, 음악 어플 따위를 전부 끈으로 묶어 벽장 깊숙이 가둬두었다.
노래가 멈추니 부작용으로 감정을수용하고 발산하는 감각이 시나브로무뎌졌다. 이런 상태가 한참이나 지속되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자각했을 땐,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황 자체에 귀찮음을 느낄 지경이었다. 문제 상황을 만든 원인을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그게 노래 때문인지는 몰랐다.
한참을 잊고 지낸 노래는 딸이 출생한 이후로 다시 시작되었다. 딸아이의 월령이 늘고 발달이 진행됨에 따라 장만한 장난감들은 거의 노래가 탑재되어 있었고, 그것들을 작동시킬 때마다 다채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와 대화의 공백을 메꿔주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좋든 싫든 노래를 듣는다. 기저귀를 갈며 젖병을 씻으며 흥얼흥얼. 노래는 침실까지 따라와 귓전을 맴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일상에 존재했다. 끈이 풀어지고 벽장 문이 열려 어른이는 잊었던 것을 하나씩 둘씩 되찾았다.
벽장에선 노래 외에도 잊고 살았던 것들이 몇 가지나 더나왔다.갑갑했던 끈이 풀리는 데서 오는 해방감, 가슴에서 올라온 감정을 꿀꺽 삼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감정이 입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오는 쾌감.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받아들였다. 반가웠다.
혀가 잘 돌지 않아 아직은 반 박자가 늦은 이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목청껏 자기 노래를 할 것이다. 노래로써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그러다가도 성장이 끝나면 한때 나처럼 다시 노래와 멀어질지 모른다. 남 앞에서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속으로만 울어야 하는 시기가 필연처럼 찾아온다.
노래를 잊은 어른이는 그걸 되찾게 해준 어린이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긴 세월에 걸쳐 마땅한 보답을 하겠노라고 다짐한다.
딸아,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알려주마. 그것들을 소중히 간직해라.그러다가 세상 일에 사람들에 치여 괴로울 때 한번씩 꺼내보렴. 큰 도움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