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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22. 2021

백화점 나들이

오래된 여가의 방법

사진출처: pixabay




 백화점 나들이는  오래된 여가의 방법이다.


  그곳은 사전적 정의 그대로 팔 수 있는 건 뭐든 진열돼 있고, 기획 단계부터 건설 유지 보수에 이르는 전 단계가 철저하게 자본의 힘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이라면 꼭 백화점이 아니어도 그런 유(類)의 장소가 다수 존재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은 백화점 정도가 아니면 자본의 최첨단을 그렇게 쉽게 경험할 수가 없다.


  가족과 함께라면 엘리베이터로 식당가가 있는 층까지 한 번에 쭉 올라가 거의 그 층에서 머무른다. 맛은 그저 그렇고 가격은 비싼 음식을 먹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행렬에 동참한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가장 큰 목적이 시간을 때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없고 시끄러운 가게 안에서 비싸고 맛없는 밥으로 배를 채운 다음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에 간다. 실내 놀이기구도 타고 장난감도 구경하고 옥상을 둘러보며 반나절쯤 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는데 이쯤이야.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니면 나와 같은 목적으로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된다. 눈에 광채를 띠고 이리저리 휘저으며 다니는 아이들과 달리, 먼발치에서 보기에도 퀭한 눈과 굽은 등은 과연 부모 됨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하지만 혼자 방문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면에서 자유롭다. 누구편의를 봐주지 않아도 된다는 측면에서 복장에 신경을 쓸 수 있다. 셔츠와 구두를 갖추고 거울도 좀 더 살피니 아무래도 꼴이 덜 추레하다. 밥을 집에서 먹고 출발하든지 백화점 바깥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혼잡한 음식점에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다. 백화점에서 뭘 먹고 마신다면 커피뿐이다. 느긋한 걸음으로 지하 2층부터 꼭대기층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한다. 들르고 싶은 층이 미리 정해져 있지만 사람 군상과 온갖 새로운 물건들을 찬찬히 살핀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출 때마다 내려서 한 층을 대강이라도 둘러보고 또 그다음 층으로 이동한다. 무언가를 판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목적을 지녔지만, 층마다의 분위기는 정말 판이하게 다르다. 식당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층과 그 안에 입점한 업체들은 파는 물건도 또 그걸 팔아치우고자 하는 고객들도 꽤나 다르다. 일반적인 복합쇼핑몰도 그렇긴 하겠지만, 백화점은 연령과 성별, 지위, 취향, 돈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고객의 어떤 구미라도 맞춰주겠다는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다.


  제대로 둘러보는 층은 당연히 남성 패션이다. 여긴 여성 패션 층과 달리 주말이라도 그럭저럭 한산하다. 섬세한 소재와 실루엣으로 된 의복들이 밝은 조명 아래 반짝이며 손짓한다. 매장 바깥에 전시된 상품들만으로도 브랜드의 무드와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마네킹에 걸린 외투를 검지와 엄지로 살짝 잡아 옷감의 질을 살피는 게 즐겁다.


  대한민국 남성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웃렛 매장과 인터넷으로 옷을 사 입는다. 백화점은 세일 폭이 적으므로 정 시즌 옷을 척척 살 수 있는 여유가 되는 사람은 드물다. 지갑에 여유가 있다 해도 남자 혼자 백화점에 와서 옷을 보고 고르는 일은 더더욱 희소하다. 보통 남성들은 남성 전용의 패션이 아닌, 유니섹스 기반의 캐주얼한 의류와 전자기기를 파는 층에 몰려가 있다.


   옷덕을 자청하는 나지만 백화점에서 옷을 거의 사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본 옷은 보통 백화점 쇼핑몰에서 쿠폰을 발행해서 더 싼 값으로 판매한다. 굳이 싸게 살 수 있는 걸 정가로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백화점이 좋은 이유는 여러 브랜드를 쾌적한 환경에서 편하게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실제로 입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해당 시즌에서 잘 나가는 건 마네킹에 입혀 놓고 전면에 배치해놓으니 흐름을 알기에도 용이하다.


  아무튼 백화점 나들이는 오랜 취미로서 즐겼지만, 근래 2년 동안은 모두를 위해 방문을 최대한으로 삼갔다. 실물 대신 룩북이나 화보 구경, 아니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는 걸로 대체한다.


  놀라운 건 물건을 눈에서 멀리 하니 갖고 싶은 마음도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의복을 포함해 필수적이지 않은 재화 전반의 물욕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면서도 답답하지 않다. 지금 보니 비싼 옷이나 잘 만든 옷을 사는 것이 타인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기만족이라는 말은 기만이다. 앞으로도 백화점 나들이는 최대한의 필요가 있을 때만 하려 한다.


  현존하는 신사들의 면면이 생각난다. 각국의 지도자나 그에 준하는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품위 있는 복장-공식적인 석상에서 보이는 드레스코드-을 떠올리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관된 톤으로서 까마귀와 다를 바가 없다. 절제된 복장이야말로 현대적 신사의 품위를 드러내는 데 제격이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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