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실에 따로 분류해 놓은 셔츠를 빨래 바구니에서 끄집어내어 점검한다. 드레스 셔츠는 클래식 복식에서 속옷 격인 존재다. 셔츠 면적의 대부분이 살갗에 직접 닿는다. 하루종일 입고 나갔다 오면 목이 닿는 깃과 소매 부분이 오염돼 있다. 보통의 빨랫감과 섞어서 세탁을 하지 않는 것은 옷감을 상하지 않으면서 깃과 소매의 때를 빼기 위해서다.
가장 안전한 법은 역시 세탁소에 맡기는 것이겠으나 맡겼다 찾는 과정이 번거로워 그렇게 하지는 않고 직접 한다. 준비물은 울샴푸와 깃 전용 세제, 그리고 표백제다. 울샴푸는 천연 소재로 된 옷감의 손상을 줄여주며, 깃 전용 세제는 오염된 부위에 풀칠하듯 발라놓으면 때가 잘 지워진다. 표백제는 옷의 색을 선명하게 낸다. 준비가 끝나면 세탁기에 셔츠를 3-4장 집어넣고, 표백제와 세제를 소량 넣고, 울 전용 코스를 선택해서 세탁한다.
지금은 물 마시는 것만큼이나 쉽고 자연스러운 이 세탁기 작동도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20살에 상경하여 기숙사에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생활력이 한없이 제로에 수렴했다. 기숙사의 공동 세탁실은 동전을 넣어 셀프로 작동하는 식이었는데 세제를 투입하는 데서부터 난관이었다. 얼마나 집어넣어야 하나? 세제 용기 표면에는 세탁물 무게 당 세제의 권장량이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으나 도무지 이해가 되는 표현은 아니었다.
그렇게 망연히 서 있으니 마침 같은 과 선배가 세탁을 하러 왔고, 세제를 집어넣을 차례가 되자 나에게 일러주는 것이었다.
세제를 얼만큼 넣느냐고? 무조건 많이 넣으면 돼.
그때 그 사람이 넣은 세제는 세제에 동봉된 계량컵으로 세 컵을 가득 채울 만한 양이었다. 현재 내 집에 있는 통돌이 세탁기를 한번 돌릴 때 쓰는(빨래 양 8kg 이상) 세제량이 계량컵 한 컵 수준인 걸 감안하면 과하게 많은 양이다. 어쩐지 세탁을 하고나서 옷에 세제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땐 뭐가 문제인지도 몰랐다. 아마도 세탁기의 성능을 탓했을 게 뻔하다.
세탁이 끝나면 소리나게 털어서 옷걸이에 걸어놓고 말린다. 셔츠는 홑겹 의류기 때문에 금방 마르기도 하고, 건조기에 넣어 고열로 건조하면 옷감이 손상되거나 수축될 우려가 있다. 한나절쯤 지나 셔츠가 적당하게 마르면 다림질을 할 차례다.
다림질도 세탁과 마찬가지로 20살때까지 내 손으로 해본 바가 없어 무지했다가, 군대에서 비로소 그 방법을 익히게 됐다. 자대에 배치 받아 만난 선임 중 한 명이 휴가를 앞둔 나를 맞은 편에 앉혀 놓고 전체 과정을 천천히 보여주었다. 스팀 다리미를 사용해서 등판-앞판-양 팔-목 순으로 구김을 펴고, 휴가복에 빳빳하게 줄을 세우고, 옷걸이에 거는 방법까지 정식으로 알려줬다.
이때 배운 방법을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다. 내가 다리는 것은 드레스 셔츠와 울 팬츠, 치노 팬츠 정도다. 코트나 니트류는 의류관리기에 넣어 한번 작동시키는 정도로 충분하고, 아내의 블라우스나 티셔츠류와 같이 흐물거리는 종류는 걸어놓고 증기를 쏘이는 스탠드 다리미로 구김만 펴 준다.
아내는 다림질을 배운 경험이 없는데다가 나와 달리 간단한 손질도 매우 귀찮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빨래가 끝난 옷을 모아 내가 다림질해주곤 했는데, 의류관리기를 마련하고나서부터는 기계에서 큰 주름을 없애주는 정도로도 그럭저럭 만족하며 지낸다.
여튼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 오후와 같이 여유가 있을 때, 일주일 분량의 바지나 셔츠를 쫙 깔아놓고 느긋하게 다림질을 시작한다. TV를 보면서도 하고 음악을 틀어놓고도 한다. 스팀을 쏘여가며 구김을 쫙 펴고 다리미를 힘껏 눌러 팔통에다 줄을 세우는 과정이 제법 즐겁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