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상 좀처럼 흥을 일으키지도 밖으로 끄집어내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스무 살 나던 해에 학과 동기들과 어울리는 것만큼에는 전에 없던 흥을 발휘했다.
그해 겪은 모든 경험들은 인생에 다시없을 만큼 진한 농도를 갖고 있어, 마치 작년에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생생한 기억의 조각 하나를 끄집어낸다. 겨울의 한기가 남아있던 삼월의 저녁, 동기들과 일차 이차에 걸친 술자리가 막 파했다. 열한 시를 넘겼고 학교로부터 집이 먼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다.
술을 못하는 나는 적당히 마시고 또 적당히 게워냈으므로 적당한 취기를 느끼며 서 있다. 곧장 기숙사로 돌아가면 숙면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대로 돌아가기 싫다. 이들과의 헤어짐이 아쉽다.
나와 같은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10명쯤 되면 으레 노래방으로 향하곤 했다. 그 이상이 되면 방 크기 때문에 사람을 나눠야 하고 노래 순서도 너무 늦게 돌아온다. 흥이 팍 죽는다. 10명 안쪽이 좋다.
대학에 와 우르르 노래방에 몰려다니기 전까진 혼자 음악을 듣고 혼자 부르기만 했다. 고등학교까지 음악 취향은 80~90년대 서정적인 발라드가 거의 주였다. 친구들이 즐겨 부르던 최신 노래들과는코드가 다르다보니, 같이 방을 잡고 부르는 것보단 혼자 오락실에 가서 코인 노래방 부스에 틀어박히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타고난 성향도 있어서, 아무리 술을 좀 한 상태여도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를 하기 전에 먼저 내 안의 수줍음과 싸워 이겨야 했다. 함께 방을 잡고 들어가서 첫 노래를 불러 본 일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몇몇 친구들이 나서서 흥을 돋우는 동안 노래방 책을 들여다보며 그나마 친구들이 알 만한 노래를 찾았다. 즐겁게 놀며 가창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이목을 너무 끌고 싶지는 않은 양가감정에 시달리면서였다. 친구들의 노래를 듣는 한편으론 노래방 화면의 상단에 나열된 예약목록을 살피며, 내 차례가 돌아오는 걸 걱정하였다. 노래는 좋아하지만 소심하고 내향적인 인간이 노래방에 갔을 때의 못난 심리 상태다. 당구장이니 피시방은 거절해도 노래방에는 빠지지 않았던 건, 노래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타향에서 새롭게 만난 친구들에게 내가 퍽 애정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당시 우리가 가던 노래방의 시간 인심은 대단히 후해서, 한 시간만으로 끝나는 법은 없고 덤을 꼭 그 이상 주었다. 아니 가끔은 우리가 지겨워서 도저히 부르지 못할 정도로 덤을 주었다. 나중엔 '주인아저씨가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의 심정이 되어 새벽녘까지 오기로 꽥꽥 부른 적도 있다.
덤이 수 차례 리필되는 동안 몇은 집에 가고 몇은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는데, 난 웬만해선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파에 속했다. 보는 눈도 줄고 하니 원래 취향의 노래도 불러보고, 반대로 친구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할 수 있다. 끝까지 남는 파였던 친구 중 몇 명과는 그때 유대감이 깊어져서인지 아직도 사이가 좋다. 대학에서 남긴 친구의 큰 부분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목이 다 잠기고 잠이 쏟아진다 싶으면 보통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쯤이었다. 비틀비틀 지하에서 일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나오면 상점들은 대개 문을 닫았고 거리는 고요하다. 더 이상 갈 곳도 체력도 없기에 첫차로 집에 가려는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터덜터덜 학교로 향한다. 학교에는 잠시 몸을 누일 공간이 있다.
눈을 잠깐 붙이다가 기숙사 문이 열리면 올라가서 모자란 잠을 보충해야지. 아 맞다. 이따 1교시 수업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