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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29. 2021

공놀이와 주파수

영혼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

사진 출처: pixabay



주말에 친구 둘을 만났다.


  대학의 동기들로, 모두 대학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만난 시간을 헤아리면 10년보단 길고 20년보단 짧다. 우리에겐 공통 분모(1. 같은 해에 태어나 2. 같은 학교 같은 전공을 선택한 사람들 3. 같은 성별)가 있어 생전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관계를 형성하기가 용이했다. 별도의 승인 절차나 손익 계산 없이 강의실과 술자리에 기꺼이 합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성향이나 걸어온 코스까지 같은 법은 아니었고 따지자면 꽤나 다른 축이었다. 각자가 수강하는 강의도, 주전공 이외에 선택하는 복수 전공도, 소속된 학회도, 나아가 교내 운동권 조직이나 재학 중 불미스러운 일로 출교 조치된 무리들에 대한 생각도 저마다였다. 같은 모양새를 한 배지를 가슴팍에 달고 합석하였으되 결정적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발견해 나간 것은, 그리고 서로에게 끌린 것은 이질성이 아니었나 한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이질성을 축구공 삼아 재미있게 놀았다. 삼각 대형으로 서서 공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놀려먹는 데 쓰거나 미래의 행동을 예측해내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때 누가 어떤 각도로 발을 뻗어 공을 날렸고 그걸 누가 어떻게 받아냈는가와 같은 세세한 기억이야 날 리 없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공이 예고도 없이 강하게 날아왔다든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든가 하는 불쾌한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술집이 떠나갈 것 같이 왁자지껄한 술자리도 즐거운 공놀이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순 없었다. 각자가 정해둔 유예 기간이 끝남에 따라 한 명씩 두 명씩 자리를 뜨면서 동기들의 술자리는 파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3학년에 접어들면서는 선배들이 그러했듯 뒷날을 준비해야 했다.


  공놀이를 하던 셋 중에선 내가 가장 먼저 졸업장을 받았다. 우리를 한자리에 묶어줬던 타리 바깥으로 나왔다. 나아갈 길이 열 갈래 백 갈래로 나누어짐에 따라 모두가 완전히 다른 방향의 삶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곧장 나아가거나 마땅한 길을 찾아 우회하고 있다는 소식도 풍문으로 듣는다. 


  다시 시간이 흐를 만큼 흐르고, 이젠 모두가 울타리에 들어가 새로 안면을 튼 사람들과 합석 중이다. 이쪽도 승인 절차가 사전에 이뤄져서, 모두와의 거리 계산이 한참 전에 끝났다. 먹고 살기 위해 들어온 자리라 어색하기 짝이 없던 것도 10여 년쯤 지나니 그럭저럭 나아졌다. 함께 공놀이를 해볼 만한 사람도 몇은 생겼다.




  대학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조용하게 멀어져갔다. 아무도 술자리를 열지 않고 아무 것도 회자되지 않는다. 이쯤 되니 동기들을 한 명씩 떠올리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예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얼굴들은 불쑥 기억에서 뛰쳐나와 눈앞에 어른거리는 법이다. 그 둘은 그런 얼굴들이었다. 옛날 생각이 나는 밤이면  친구들에게 곧장 연락한다. 안부로 시작해서 사는 이야기와 살았던 이야기를 섞어가며 한참 이야기한다. 연락으로도 뭔가 아쉬운 구석은, 어떻게든 술자리를 만듦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꽤 먼 거리지만 사는 곳이 해외도 아니고 일년에 한번쯤은 서로 오케이다.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일을 되짚어 보았다. 붙어 지낼 사이는 아니었지만, 역시 크게 다퉈 거리를 둔 적도 없었다. 힘의 우열이나 돈과 같은 같잖은 잣대로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 본 일도 없다.




  셋을 묶을 적절한 단어를 찾아 사전을 펼친다. 친구는 포괄적이다. 지기知己는 낯간지럽다. 코드code는 정치적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길을 가기에 동료도 아니다. 사전을 넘기는 손이 주파수에서 멈추었다. 주파수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으므로 처음은 다른 동기들과 비슷한 정도로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파수대數帶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어떤 우연한 기점을 계기로 전기 신호가 통한다는 일치된 관념을 만들 수 있었다. 주파수란 결코 같을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다. 어떤 부분은 충분히 다르더라도 결정적인 부분에서만 신호가 통하면 된다.


  이런 표현도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그러한 들을 한데 묶어 '영혼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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