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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Dec 06. 2021

관리의 즐거움 -손세차편-

불편함과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이 있어 언제까지고 지속할 수 있다

사진 출처: pixabay




지난 글(관리의 즐거움-세탁편-, 관리의 즐거움-슈케어편-)에 이어 3부작의 마지막이다.  


  가진 물건들 중 제법 고가의 것들을 생각한다. 자동차, 의복, 구두. 아무리 살살 다루면서 사용하더라도 몇 번 끌고다니면 먼지가 쌓이고 얼룩이 묻는다. 속이 멀쩡해도 외관이 흉해지면 그다지 쓰고 싶지 않다. 기왕이면 타인에게 외적으로 멀쩡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예의로나 기분상으로나 낫지 않은가.


  의복과 구두와 자동차를 관리하는 요령은 각자의 나름이다. 세탁 및 다림질과 구두닦이와 손세차. 빈도와 방법에 따라 품이 많이 든다고도, 또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이에게는 돈을 주고서라도 누군가에게 부탁할 법한 일들이다. 아니면 미루다 미루다가 아주 최악이 되기 전에야 가까스로 최소한의 손질만 하는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다.


  굳이 글로 내놓고 싶을 만큼, 세 가지 모두에 애착을 느낀다. 전문 업자에게 맡기는 건 되도록 삼간다. 내 손으로 하는 편이 재미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창궐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올해는 각각의 관리에 1~2시간쯤 할애하는 건 별로 부담도 안된다.


  손세차는 차를 처음 구입한 해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오는 나만의 원칙이다. 자동차의 다른 관리는 몰라도, 세차는 절대 자동세차를 하지 않는 것이다. 내 차는 새 차가 아니다. 그리고 차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거나 부품 하나하나를 세세히 신경쓰는 수준도 못 된다. 효율성을 싫어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나도 되도록이면 일이 효율적인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동세차냐 손세차냐는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다.


  결혼 전에 부은 1년치 적금에 조금 보태서 장만한 중고 SUV를 만 7년째 타고 있다. 차를 좀 몰고 처음 세차를 하러 간 곳이, 집 근처의 셀프세차장이었다. 퇴근길이나 주말에 세차장을 지나가며 사람들이 세차하는 모습을 보다가 그냥 한번 가본 것이다. 차와 몸만 갖고 쓱 들어갔을 뿐 세차 방법이고 용품이고가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차를 세우고 내리고 나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멀뚱멀뚱 서 있자, 주인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리고 손세차의 순서를 하나씩 알려주면서 세차장의 용품을 빌려주는 게 아닌가. 말투가 좀 무뚝뚝하긴 해도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가 일러준 순서 대로 따라가면서 곁눈질로 살펴보니 주인은 이 사람 저 사람을 봐주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손을 거들고 있었다. 그리고 틈틈이 나에게도 와서 세부적인 안내를 해 주었다. 덕분에 어찌어찌 세차를 마쳤다.


  이후로 짧게는 2주에 한번, 길게는 한달에 한번 그 세차장에 찾아가 손세차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필요와 아저씨의 추천에 따라 용품을 하나씩 갖춰가면서 세차용품 전용 버킷도 마련했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역시 그때 주인 아저씨를 만나길 잘했다. 3년간 같은 곳을 다녔어도 그다지 친해지진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충분히 감사한 분이다.


  습관이 3년을 넘어가자 자연스레 원칙이 되었다. 자동세차가 아무리 저렴하고 간편하다고 해도, 어쩐지 내 차를 기계에 넣고 싶지는 않다. 기계가 차를 더 깨끗이 씻겨준다고 해도, 차라리 한 달 내내 차를 더러운 상태로 두는 한이 있어도 내 손으로 씻고 말겠다. 다소 융통성 없고 다소 고집스러운데 뭐 그런 게 원칙 아닌가.


다음은 세차의 전체 과정으로 대략 40~50분 정도가 소요된다.

1. 나른한 주말 오전, 간편한 복장으로 차에 타서 집 근처의 세차장으로 몰고 간다.
2.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호스에서 나오는 고압의 물로 자동차를 충분히 적신다.
3. 차량용 샴푸를 전체적으로 뿌려주고, 세차장의 긴 막대솔과 스펀지로 샴푸를 잘 문질러준다.
4. 물을 쏴서 차에 묻은 샴푸를 깨끗이 씻어낸다.
5. 차에 타서 에어건과 청소기가 있는 구역까지 이동한다.
6. 버킷에서 걸레를 꺼내 자동차 외부에 묻은 물기를 꼼꼼히 닦아 낸다.
7. 유리창과 바퀴를 제외한 겉면에 코팅제를 뿌리고, 극세사 천으로 문질러 광을 낸다.
8. 유리창에 전용 세제를 뿌리고, 극세사 천으로 문지른다.
9. 자동차 문을 모두 개방하고 매트를 꺼내놓는다.
10. 청소기로 차량 바닥과 시트의 먼지, 매트의 흙 따위를 빨아들인다.
11. 매트를 원위치시키고, 실내 세정제를 차량 내부에 구석구석 뿌린 다음 천으로 닦아 낸다.
12. 차량 용품을 버킷에, 걸레는 봉투에 각각 정리하고 시동을 건 다음, 창문을 열어 환기한다.
13. 차를 곧장 집으로 몰고 가 지하주차장에 세워놓고 내려서 외관을 천천히 살핀다.


  세차를 하는 동안엔 목이 마르고 팔이 뻣뻣해지고 요즘 같은 철엔 제법 춥지만 그래도 즐겁다. 불편함과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이 있어 언제까지고 지속할 수 있다. 먼지가 거품과 함께 씻겨내려가고 얼룩이 하나씩 지워지고 흙덩이가 말끔이 치워지는 과정 모두가 보람차다.


  내 마음 속 먼지와 얼룩과 흙덩이도 꼭 저와 같은 모양으로 녹아 사라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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