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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Dec 27. 2021

돈가스 주세요

인생을 살아내느라 이지러진 영혼을 뜨겁게 위로할 것이니

사진 출처: 김지룡 외, <사물의 민낯>

 



  남자의 3대 소울 푸드라는 말이 있다. 남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들로 돈가스, 제육덮밥, 돼지국밥을 꼽는다. 여자 버전의 3대 소울 푸드로는 떡볶이, 닭발, 파스타가 있다(고 한다). 각 음식에 대한 남녀의 기호가 뚜렷하여 이른바 3대 소울 푸드라는 게 밈으로 만들어질 정도니 과연 남녀유별을 인정하는 바다.


  나의 경우는 3대에서 라면을 더해서 4대 소울 푸드라고 칭한다. 4대 소울 푸드는 돼지고기가 포함되었다는 공통점 외에는 결이 매우 달라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지만, 굳이 순서를 꼽자면 돈가스를 첫째로 두고 싶다. 미지와의 조우였던 다섯 살 무렵에 이미 그것은 입맛을 사로잡았으며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선호 메뉴기 때문이다. 다섯 살의 내가 돈가스를 얼마나 좋아했는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시를 회상하실 때 꼭 하는 멘트에서 익히 확인했다.


네가 5살 때 시내 000 집에 데려갔는데 돈가스 한 접시를 혼자서 싹 비웠지.
조그마한 녀석이 얼마나 잘 먹는지, 접시에 묻은 소스까지 전부 핥아먹었다니까.


  그러고 보면 돈가스를 싫어하는 어린이가 있기는 할까. 갓 튀겨 낸 돈가스의 향기와 맛, 그 식감... 어린이로서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 도사리고 있다. 감자탕집이나 횟집처럼 돈가스와 하등 상관이 없는 음식점이라 해도, 으레 어린이 메뉴로서 돈가스쯤은 구색으로 갖추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어린이에게 독감 주사를 맞히거나 치과 진료를 받게 할 때, 부모들의 가장 흔한 구실이 돈가스라는 데 강한 심증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입학식이나 졸업식, 가족의 생일과 같이 무언가의 기념을 위해서도 경양식집은 제격이다. 80년대 이후 출생한 이라면 누구라도 돈가스에 얽힌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범국민적 위상을 고려했을 때, 돈가스가 내 고유의 소울 푸드라 하기에는 근거가 다소 빈약하다.  


  결정적인 근거가 하나 더 있는데, 놀랍게도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부모님은 돈가스집을 운영하게 되었다. 돈가스집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고 실은 레스토랑이다. 점심 장사에는 주로 돈가스를 포함한 경양식을 팔고, 저녁 장사는 각종 주류와 안주를 팔아 식사 겸 회식을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자영업의 숱한 종류 중에 왜 레스토랑이었을까. 내가 미취학일 때만 해도 아버지는 호텔 체인에 딸린 양식당이나 중식당의 지배인이었으며, 어머니는 주부셨다. 아버지가 지금의 나만한 젊은 나이에 어떤 연유로 퇴직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추측건대 큰 규모의 직장에서 지배인으로 근무하면서 얻은 접객 및 경영 일반에 대한 노하우와, 레스토랑이라는 구체적인 비전이 합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정도다.   


  어쩌다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 이십 대 초반이 될 때까지 쭉 레스토랑집 아들로 살았다. 같은 자영업이라 해도 문방구집 아들, 청과물집 아들, 씽크집 아들과는 천양지차로 다른 삶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운을 돈가스 주세요, 로 뗐으니 돈가스가 최고의 소울 푸드가 된 연유에 집중한다.


  90년대의 호황기와 밤낮으로 일하는 두 분의 근면성실함이 맞아떨어져서, 레스토랑 장사는 20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순항했다. 이것도 어른의 관점일 뿐 어린이에게는 사실 부浮든 침沈이든 그리 상관없다. 우리집이 돈가스집이다, 는 자각 하나면 족했다. 이는 앞서 말한 문방구집, 청과물집, 심지어 분식집과도 비할 수 없이 높은 긍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가 먹고 싶을 때 레스토랑 문을 현관문처럼 열어젖히면서 이렇게만 외치면 되었으니 말이다.


저 배고파요! 돈가스 주세요!


  '돈가스집 아들'이라는 직함은 평상시에도 만족스러웠지만, 생일날이야말로 더할 나위가 없었다. 지금이야 부모님 카드를 앞세워 패밀리 레스토랑이니 키즈 카페를 전세 내어 벌이는 생일잔치가 흔해졌다고 해도, 당시에는 생일이라 하면 친구 집에 방문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다. 친구 집에 가서 만화책이나 게임 CD 따위의 선물을 공개하고, 케이크 촛불을 끄고, 어머니가 직접 만든 유부초밥이며 잡채, 동네에 몇 없는 치킨이나 피자 전문점에서 시킨 음식 등을 실컷 포식하고는 컴퓨터 앞에 몰려 가 초저녁까지 게임에 몰두하는 것이 생일의 관례였다.   


  나의 생일은 드물게 당당할 수 있는 날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열 명 내외의 동무들과 레스토랑으로 곧장 향한다. 앞장에서 문을 열면, 나와는 영 딴판으로 훤칠하신 아버지가 멋진 복식으로 우리를 반기시고 뒤에서 쭈뼛대던 친구들은 반쯤 얼어붙는다. 그들을 단체석 자리로 데려가면 테이블에는 이미 냅킨이며 나이프, 포크 따위가 정갈히 준비되어 있다. 콜라를 따라 마시는 동안 친구들의 경직은 서서히 풀린다. 여긴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가 아니라 친구의 생일잔치라는 판단을 함에 점차 떠들썩해진다. 주방에서부터 풍겨오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에 손님들의 흥분은 차차 고조되다가, 수프와 돈가스 접시가 하나씩 등장하는 순간 절정에 이른다.


  테이블 안쪽에 앉은 친구부터 접시를 차례차례 건네주고 이윽고 모든 사람 앞에 1인분의 수프와 돈가스가 놓인다. 루(roux)를 기반으로 만든 정통 수프는 적당히 느끼하고 적당히 짭짤하여 메인 디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린다. 훌훌 떠먹고 바닥까지 싹싹 긁어낸 다음, 접시를 물린다. 이제 대망의 메인이다. 따끈한 김이 오르는 돈가스에 데미그라스 소스가 담뿍 끼얹혀 있고, 케첩과 마요네즈 소스에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와 크링클 컷의 감자튀김, 넉넉한 밥이 원반형의 커다란 접시를 가득 채운다. 테이블의 정중앙에는 생크림 케이크가 우뚝 놓여 있다. 아-이는 완벽 무결한 잔칫상이었다.


  우리 말고는 손님이 없는 시간. 식사 예절이며 옆 테이블 손님의 눈치를 볼 것도 없겠다,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식기를 절그럭거리면서 음식을 마구 씹어 삼킨다. 친구들이야 흔치 않은 기회니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이 당연했으나 평시에 흔히 먹던 나에게도 그날의 돈가스 맛은 각별했다.  자칫하면 못난 어른들처럼 식의 맛에 길들여질 뻔도 하으나, 여럿이 사이좋게 나누어먹는 맛이야말로 진짜 맛임을 안 것이다. 이런 쪽으삼겹살도 치킨도 지만, 가장 상징적인 첫째 자리에는 역시 돈가스를 놓고 싶다.




  적게 잡아도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많은 것이 변모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리를 옮겨 가며 2010년대 초까지 레스토랑을 운영하셨으나, 경기 침체로 인해 결국 손을 턴 지 오래다. 돈가스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마트에서도 흔히 구하여 먹는 음식이 되었다. 끓는 기름이 튀는 팬 앞에 설 필요 없이 에어프라이어에 집어넣고 다이얼만 돌리면 땡-하고 바삭한 돈가스가 만들어진다. 돈가스를 냉면이나 떡볶이, 카레, 김치찌개처럼 이질적인 음식들과 함께 먹는 구성도 흔해졌다. 어쩌다 보니 그 옛날의 경양식은 주류에서 비주류가 되고 말았다.


  우리도 변모했다. 틈만 나면 머리를 맞대고 오락에 여념이 없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인생을 사는 중이다. 몇을 제외하고는  왕래가 뜸해졌으며 태반은 연락처조차 잃고 말았으 나는 그들의 안녕을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 하였으니,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든 한 번쯤은 다시 만날 것이다. 재회의 계기가 부고만 아니라면 꼭 함께 돈가스를 먹고 싶다. 익숙하고 그리운 그것이-그 사람들이-인생을 살아내느라 이지러진 영혼을 겁게 로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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