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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Dec 31. 2021

소의 기상을 닮아

걸음이 닿는 논과 밭을 우직하게 일궈내고저

출처: pixabay




  올핸 소의 해였다. 타고난 띠는 소가 아니지만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면 그럭저럭 와 닮게 살지 않았나 한다.


  살며 추구해 온 인생의 가치 중 으뜸은 평정平靜이었다. 평정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인생의 어떤 경로에서건 예측 가능한 길만 골라 걸으려 했다. 손에 넣고 싶은 것이 생기면 먼저 하는 일은 충동을 가라앉히고 손에 쥘 수 있는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었다. 내 힘으로 되겠다 싶은 건 비축한 힘을 총동원하여 쏟아붓는다. 이리저리 따져봐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건 처음부터 포기한다.


  손에 쥘 수 있을 만큼만 욕심 낸다. 손아귀에 맞지 않는 것을 욕심 내었을 땐 반드시 탈이 났다. 그 탈이 어렸을 땐 부모님의 꾸짖음이었다. 그때야 울고불고 싹싹 빌면서 위기를 넘겼지만, 지금은? 선을 어가면 그에 응당하는 대가가 청구된다. 잠깐의 망신부터 어쩌면 패가망신까지도. 무언가 잘못되어간다 싶을 때 곧장 그만두면 그래도 최악의 수만큼은 면한다.


  굳이 외부에서 오는 제재를 골라잡을 것도 없다. 순리와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은 마음의 불안정을 초래한다. 불리한 패를 손아귀에 쥐고 게임을 이어나가는 심리 같은 것인데, 나는 이렇게 '질 게 뻔한 게임'을 정말로 참지 못한다.


  모든 판-인생-이 처음부터 내게 불리하게 짜여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때는 밑천을 다 걸고서라도 들이받았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그 지는 판에 자청해서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지고 있는 판을 뒤집는 승부사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되지 못한다.


  예측 가능한 길만을 골라 온 결과 나는 딱 내가 바랐던 만큼의 밭뙈기를 일구는 소가 되었다. 농경사회에 태어난 소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봄이 되면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 흘려 가꾸고, 가을에 수확을 해서 겨울에는 일을 쉬며 심신을 회복하는 그런 삶의 사이클을 반복한지 10년쯤 된다.

 



  작은 밭뙈기를 가꾸는 데 몰두하다보니 시야가 한정되어 푯말 너머의 일에 무심할 때가 많다. 뉴스를 보니 앵커가 추운 소식을 전한다. 사람들은 얼어붙은 날씨와 경제에 손발이 꽁꽁 묶인 채 힘겨운 겨우살이 중이라 한다. 작년이고 이번 해고 유례 없는 재해가 지속된 탓에, 사계절의 경계는 무너져 일년 내내 겨울을 살아온 것만 같다.  


  겨울이 길어지는 동안에 운이 좋은 자와 운이 좋지 못한 자들의 격차는 끝도 없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논밭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창고의 곡식을 두 배로 세 배로 늘리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내년의 수확을 미리 빚져서라도 곡식을 불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고도 한다. 다음 뉴스 한꼭지엔, 당장 끼니를 때울 곡식이 없어 배를 주리는 사람들이 비춰, 조금 전과 볼썽 사나운 대조를 이룬다. 양극단에 서 있는 이웃들 사이에 자신을 데려다가 세워본다. 나는 이들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이웃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한 해 동안 어떤 목소릴 내었으며, 내 소출所出얼마나 양보하였는가. 


  사람들을 매섭게 휩쓸어가는 된바람 멍하니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농한기를 맞아 몰두하고 있이 생각 났다. 틈틈이 책을 읽고, 생각에 잠겼다가, 흩어낟알을 그러모아 글을 고, 가족과 있는 힘껏 부대끼고, 쇳덩이로 뒷다리 힘기르명년의 농사를 준비하던 참이었다. 


  해가 지나 한 살을 더 먹으면 거년보다 더 넉넉한 인심으로 이웃을 대하고, 때로는 잉여의 소출을 그들에게 내어 줌으로써 소에게 부끄럽지 아니한 인간이 되고자 신축년辛丑年 소회를 여기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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