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마귀소년 Jan 14. 2022

52주의 기록

2020.11.08.-21.11.06., 스트렝스 훈련에 관한 기록

사진: 운동 수첩의 표지




  스트렝스 훈련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시작은 지극히 즉흥적이었다. 주마다 세 번씩 실시하는 몇 가지 운동의 세트별 무게를 기억에만 의존하려니 영 부정확하고 불편해서였다. 들고 있던 걸 잠깐 내리고 고개를 돌리니 책꽂이 구석에 작은 수첩이 보였다. 수첩을 꺼내어 두 번째 쪽을 펼치고는 연필꽂이에서 손에 잡히는 걸로 휘갈겨 썼다. 2020년 11월 9일이었고, 기록 1주차였다.


  수첩에 적을 내용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체계를 갖추어갔다. 기록하는 시점을 운동을 하는 도중이 아니라 운동 전이나 운동 후로 바꾸었다. 필적도 조금씩 손을 보아 가급적 정서에 가깝도록 하였다. 그렇게 다듬어간 기록의 얼개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매 워크아웃이 실시된 연도와 월, 일
2. (1번의 바로 옆에) 해당 주가 운동을 시작한지 몇 주차인지
3. 스쿼트를 포함한 유형 A인지 데드리프트를 포함한 유형 B인지
4. 워크아웃에 속한 운동 종목들의 이름과 본 세트 무게는 몇 kg인지


이를 수첩에 옮긴 바는 대강 이러하다.

-20/11/25 (3주차)
-워크아웃 A
-바벨 백스쿼트: 80kg
-오버헤드 숄더 프레스: 48kg
-중량을 단 딥스: 20kg


  2021년 11월 첫 주를 기점으로 기록은 52주차를 돌파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운동을 하겠다는 1주차의 약속을, 지난 1년 간 지켜왔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새로운 1주차(통합 53주차)를 맞이한 뒤로도 단절되지 않아서 이번 주에는 10주차로 접어들었다.


  수첩의 주인은 맺고끊음이 칼같은 성격이 아니어서 기록을 세세히 들춰보았을 때 부끄러운 구석이 얼마든지 있다. 주 3회라고 했지만 3회를 채우지 못한 주가 몇 번이나 있다. 컨디션 난조, 요추 통증, 바쁜 업무 주간, 알람을 듣지 못함 등 불성실함의 사유는 10가지도 넘는다.


  3회를 채웠다고 해도 애초에 계획한 종목별 총 횟수를 달성하지 못한 사례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런 사례들에선 내 근성이라는 게 그리 대단하게 내세울 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절실히 느낀다. 어디까지나 '심신의 단련을 위한 생활체육'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 있어 그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1주기를 넘긴 지금에 와선 한번쯤 반성할 만한 부분이다.     




  현재는 직장의 일이 바쁘지 않아 일주일을 3:3:1(글쓰기:운동:휴식)이라는 나만의 비율로 정해두었으며 그럭저럭 약속을 지키고 있다. 먼저 루틴 중 일 순위인 글쓰기.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 마련해놓은 글감 50개를 진작 소진하였다. 글 100개까진 갈 길이 아직 먼데, 요샌 물통을 모로 기울이면 바닥이 언뜻언뜻 보여 슬슬 걱정된다. 바가지로 퍼내다 컵으로 퍼내다 완전히 밑바닥이 드러나면 뭐... 주2회/주1회 업로드로 바꾸는 수밖에.


  글쓰기의 차순위가 운동이다. 아무래도 브런치처럼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내주시고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시며 글쓴이가 염두하지 않은 부분까지 캐치하여 후한 칭찬 세례를 남겨주시는 분들이 없고, 이제나 저제나 같은 걸 혼자서 반복하고 있다보니 의욕 측면에서 밀리고 마는 것이다.


  다만 운동하는 날이 글을 쓰는 날보다 반가운 것은 기록하기 쉬워서이다. 새로운 기록은 바로 지난 기록의 연장이자 전진이므로 정해 둔 포맷에다 몇 가지 숫자만 바꿔쓰면 된다. 계획한 횟수를 채우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무게를 하향한다.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해냈다면? 다음에는 무게를 상향한다. 간신히 채웠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다음에 같은 무게로 한번 더 실시한다. 여기엔 글감의 발굴이니, 창작의 시간이니, 독자의 반응을 염두에 둔 각색이며 퇴고니를 포함한 일체의 머리 아픔이 없다.




  이전 단락까지 써놓고 노트북에서 손을 떼, 수첩을 첫 장부찬찬히 살펴본다. 이건 글쓰기시작하고 생긴 한 버릇으로서 보이는 것 아래 숨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는 속셈이다.


  으음...아직은 어쩐지 고구마 줄기뿐인 느낌으로 몸통이 만져지지 않는다. 일단 손에 흙을 묻힌 참이니 줄기나마 끄집어내어 여기 널어놓는다.


  즉흥은 인생에 꽤 도움이 된다. 단 신념이 기저에 깔려 있을때만. 운동의 기록도 즉흥으로 시작했으나 '주 3회 운동'이라는 신념이 마련돼 있었기에 일시적 느낌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고, 중도에 헤매거나 되돌아가지 않았다. 즉흥은 신념이 파놓은 고랑을 따라 흐르며 차츰 두서를 갖추어간다. 운이 조금 따른다면 언젠가 작물을 수확할 수 있으리.


  신념부터 마련하자. 그런 연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무엇이라도 자.




새로 맞는 52주의 기록 중 일부 (2022.01.10.-01.21.)



매거진의 이전글 내 홈짐을 소개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