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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Jan 10. 2022

애착자동차 뉴스알

우리는 이곳저곳을 함께 달렸고 서로를 길들여놓았다

사진 출처: pixabay




뉴스알: 2014년에 출시된 3세대 스포티지의 페이스리프트, 더뉴스포티지R의 애칭.


  나는 뉴스알의 오너다. 풀 네임은 번거로워서 입 밖에 내본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서양인들이 퍼스트 네임이니 패밀리 네임으로도 모자라 미들 네임까지 덧붙여 단숨에 부르기도 어려운 단어 구를 이름이랍시고 갖고 있어도, 그네들과 가까운 동무에게나 집에서 불리는 이름은 짧고 부르기 쉬운 별도의 호칭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한다.


  뉴스알은 2014년에 생산되어 첫 주인과 1만 5천 킬로쯤을 달린 뒤, 이듬해 중고차 매장에서 두 번째 주인과 만났다. 나의 생애 첫 차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말썽이나 다툼 없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리고 앞선 7년의 세월과 같이, 예기치 못한 횡액이 없다면 앞으로 10년쯤은 거뜬히 타고 다닐 수 있으리라.


  차 입장에서 섭섭할 소리겠지만, 중고차 단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한 번도 뉴스알을 첫 차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20대 후반의 내가 꿈에 그리던 차는 포드의 새빨간 머스탱이나 쉐보레의 샛노란색 카마로와 같은 머슬카였다.


  그 둘은 미국 태생으로 미국인의 한 전형典型을 빼다 박았다. 머슬카라는 호칭답게 우선 외관부터가 우락부락하게 생겨 먹었다. 다음으로 팔기통 엔진과 5,000~6,000cc를 상회하는 배기량의 조합이란-경험해보지 못해 상상한 바를 옮기지만-고급유를 꿀꺽꿀꺽 먹어치운 뒤에 힘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우렁찬 소리를 토해내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질주할 수 있는 스펙이다.


  거침없는 질주의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리터 당 6km도 나오지 않을 나쁜 연비와, 운전자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불쾌하게 울려댈 소음, 보통 차의 몇 갑절로 뿜어져나올 게 분명한 매연까지. 어느 모로 보나 미국인과 썩 잘 어울린다 할까.

머스탱, 출처 Ford


  '왜 머슬카가 드림카였는가?'를 골똘히 생각해보니 오래전부터 순수한 힘에 대한 갈망과 숭상을 간직해서였다. 십대에는 WWE(프로레슬링)와 드래곤볼, 이십대엔 마블 스튜디오의 프랜차이즈 영화와 김용의 무협지에 빠졌고, 삼십 줄에 들어서 북유럽의 스트롱맨, 고대 중국의 역사力士들을 흠모하며 스트렝스 훈련으로 몸피를 키우려고 끙끙대고 있다. 비록 자각은 뒤늦게 찾아왔어도 앞선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열정은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된 이었다.


  아무리 목마르게 갈망하고 경건한 자세로 숭상하였다 한들 이상은 이상, 현실은 현실이다. 머스탱과 카마로 중 하나를 20대 후반쯤에 사서 재미 보다가 30대에 슬그머니 세단으로 갈아타자는 속셈을 갖고 있었으나, 돈이 얼추 모일 때쯤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했으니 가족의 편안함과 안전을 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머슬카란 나와는 함께 갈 수 있어도 '우리'와 함께 갈 수는 없을 차였다. 시운전쯤 해볼 수 있었겠지만, 질척대긴 싫은 마음으로 깨끗이 단념했다. 그 뒤로는 아직까지 연이 닿지 않았고, 여행지에서 사나흘 기분 낼 렌터카로서도 몰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내가 그것을 소유하는 날이 온다면, 필시 어린 딸아이가 커서 독립했으며 나와 아내가 넉넉한 돈줄을 쥔 상태로 은퇴한 시점일 테다. 짐작건대 내연기관 자동차로서의 머슬카는 진작에 단종되고 말았으며, 전기차로서의 머슬카란 먼 옛날의 조상을 본받다 불초不肖가 되어 있을 것이다.   

   



  카마로가 프로 레슬러라면 뉴스알은 도시남이다. 현실이 갑갑하다고 느끼지만 제발로 도시를 벗어나는 일은 없고, 마구 내달리고 싶어도 속도위반 딱지가 무서워 감히 그러지 못하며,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쇼에 나와 구릿빛 근육을 꿈틀거리는 마초맨을 부럽게 쳐다보는, 속살이 허연 남자. 그런 도시의 남자를 상상해 본다.


  이 차는 태생이 SUV이다. 하지만 오프로드를 달리지 않는다. 디자인이 매끈하고 세련되다. 그러다 보니 SUV란 본질에서 오히려 멀어졌다는 느낌도 든다. 내부 공간이 그럭저럭 넓다. 그렇다고는 해도 요새 유행한다는 차박을 할 만큼은 아니다. 이래저래 명색과 실질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좋게 말하자면 양수겸장兩手兼將이요, 나쁘게는 적당주의適當主義다.  


  적당주의란 세상의 많고많은 차 가운데 이 차를 선택한 오너의 성격이자 본질이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조국, 제조회사, 제조일자, 차량 브랜드, 차량 가격, 제원, 주입 연료 등 무수한 지점에서 차와 나는 서로를 대변하는 관계에 있다.


  출근길. 시동 버튼을 누르고 룸 미러를 흘끗 보았을 때 거울에 비치는 건, 현실과 이상 중 어느 것도 손에서 놓기는 싫고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극단으로 밀어붙이지도 못하는, 뿐이다.


스포티지, 출처 기아


  운전의 첫걸음을 뗀 해부터 함께 하여 제법 원숙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곳저곳을 함께 달렸다. 주인은 각종 조작으 자동차를 제 육중한 신체와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에 맞게 길들여놓았고, 역으로 그것은 저에게 내재한 주행 능력과 각종 소모품 교체 주기를 꾸준히 알림으로써 주인을 길들여놓았다. 이젠 도로로 나서면 나와 자동차가 한 몸이라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감겨든다.


  보통 소중하게 여기는 차를 애마에 비유하지만, 조금 다른 육아 용어로 표현하자면 뉴스알은 나의 '애착 자동차'다. 첫 만남은 서로 데면데면했으나 충분한 시간이 강한 애착 관계를 만들었다. 그런 연유로 이제는 그것을 다른 무엇과 바꾸겠다는 마음을 좀처럼 먹지 못한다.


  어린 날 선망의 대상이었던 빨간 자동차가, 지금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양도된다는 조건으로 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한들, 마음이 동하지 않을 것이다. 한때 연모했던 대상으로서 아련한 눈길은 보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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