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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Jan 19. 2022

아우를 만나서

어리고 연약했던 그가 여태까지 걸어 온 길이 험난하지 않았기를

사진 출처: pixabay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아우와 만나고 있다. 전화로 안부를 묻다가 아우로부터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서 아침마다 운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운동해볼까'하는 말이 불쑥 입 밖으로 나왔다.


  그가 운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하니 별로 대단치 않은 나라도 도움이 될 성싶었다. 즉시 좋다는 대답이 떨어졌고 나는 짐백에다 운동에 필요한 장비들과 프로틴 쉐이크가 담긴 텀블러를 챙겨서 차를 몰았다.


  차를 모는 동안 그를 생각했다. 네 살 터울의 아우는 내가 결혼하면서 분가한 후 지난 7년 간을 마치 남남과도 같이 지냈다. 부모님 집에 함께 살 땐 노래방도 가고 산책도 하면서 그럭저럭 가까웠는데도 결혼을 하고 나니 왕래가 뜸해졌다.


  아우가 타지의 대학을 다니며 외로움에 힘겨워하고 취직 준비로 고생할 때에도, 무심한 형은 진심 어린 전화는커녕 생각조차 하는 일이 없었다. 갑작스런 소식이 없는 게 좋은 소식이려니 할 뿐이었다. 그의 안부는 직접 묻느니보다도 어머니를 통해서 듣는 게 다반사였다.


  남처럼 멀던 아우는 어느 새에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 몇 년간을 부모님 댁에 얹혀살며 버는 돈을 개미처럼 모으더니, 집을 구했다 했다. 혼기가 됐는데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게 벌써 한참 전 일이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혼까지 이르렀다. 그간 전문으로 희미한 존재감을 알리던 대학생의 아우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  




  이내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를 대놓고는 헬스장 시설로 올라가 안을 엿보니 아우가 트레드밀 위에서 이어폰을 끼고 달리는 중이었다. 실내 운동화로 갈아신고 들어가자 몸을 돌려 날 보더니 곧장 트레드밀에서 내려온다. 그의 얼굴. 마치 7년 만에 상봉하는 것과 같이 어딘가 어색하다. 아내 없이, 그리고 입에 아직 익숙지 않은 제수씨 없이 만나려니 더 그렇다.


  가져온 가방을 열어 인사와 함께 텀블러를 건넸다. 함께 초코맛 프로틴 쉐이크를 마셨다. 과거 즐겨 먹던 쭈쭈바를 연상시키면서도 한참은 이질적인 무언가다. 우리는 쭈쭈바를 나눠먹던 그때와 닮았으면서도 한참 달라져 있다.


  운동 경력과 방법에 대해 물어보니 아우는 열심히만 해 왔을 뿐 이론적인 기초가 없는 상태였다. 감만으로는 목표를 잡기도 성과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나는 함께 운동을 하려던 계획을 접고 일일 개인 트레이너를 자처해 처음부터 하나씩 가르쳐 주기로 했다.         


  아우를 벤치에 앉혀 놓고 우리 몸의 대략적인 구조와 근육들의 이름, 근육과 관절이 복합적으로 쓰이는 주요한 운동들의 이름, 운동의 적절한 빈도와 강도, 점진적 과부하의 원리 같은 기초 이론들을 생각 나는 대로 빠르게 주워섬겼다.


  반이나 알아들었을까 싶어 흘끗 보니, 그는 내 말에 줄곧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이따금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이론 설명을 끝내고 시범으로 넘어갔다. 기구별로 가장 낮은 무게에 놓고 잠깐씩 보이는 나의 시범을 살펴보며 아우는 이것저것 묻는다. 자리를 비켜주고 앉게 한 다음, 가만히 하는 양을 지켜보니 곧잘 따라오는 게 아닌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일절 불평이 없다. 내가 일러준 대로만 하는 걸 보니 고맙고 흐뭇하다.




  아우는 여느 집의 '막내'처럼 실제 나이와 무관히 어린 듯이 느껴진다. 부모님의 눈에 아우는 예로부터 미숙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애일 뿐이여서, 늘 일을 그르칠까 못 미더워하셨고 지금도 밖에서 무슨 낭패를 겪지나 않을까 걱정하신다.


  나는 우리집의 선발대로서 먼저 길을 내며 나아갔고 당신들은 선발대의 시행착오를 살핀 다음, 후발대에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어지는 길만을 골라주었다. 한때 부모님의 그런 처사 그런 양육이 아우에게 좋은 것일까를 생각해본 바도 있었으나 당자가 별 말이 없는 것을 보고 깊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내가 내놓은 길을 조심스럽게 짚으며 따라오기에 여념이 없는 아우를 본다. 마음이 어리고 연약했던 그가 여태까지 걸어 온 길이 험난하지 않았기를 난생 처음으로 생각하였다.  


  미숙한 자세를 고쳐주며 굵은 목과 어깨에 손을 얹어도 본다. 성년이 되고 나서 몸을 건드려 본 일이 있었나? 어렸을 땐 무던히도 붙어있고 또 무던히도 싸우느라고 손길이 갔던 연약한 몸은 없고 탄탄하며 따뜻한 감촉이 전해온다. 머리통에 상투는 없지만 어쩐지  같은 걸 이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아우는 1시간을 겨우 채울 때쯤 갑자기 집에 가겠다 한다. 이유를 물으니 제수씨 먹을 밥을 차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픽 웃었다. 그래? 그런 중요한 일이 있는데 말을 안 했어? 운동 접고 바로 가야지!




  신발을 갈아신고 시설을 나오면서 우린 다시 만날 약속을 한다. 한번 갖고는 어림도 없어. 아직 형에게 배워야 할 게 많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준비할 것을 단단히 일러둔다. 제 집이 있는 아파트 동까지 걸어와 인사를 하였고, 이내 등을 돌려 현관문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뒷모습을 보는데 어쩐지 애틋했다.


  나는 이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지 경험으로 안다. 늘 한자리에 있던 사람과 함께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각자의 자리로 갈리어 떨어질 때 드는 묘한 느낌이다.


  또 보자. 한편으로 어색하고 한편으로 애틋한 만남들을 앞으로 계속해서 축적해야지. 그 축적에 의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함께 이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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