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쯤에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와서 밝히기에 조금 미안하지만 그때는 극도로 공부하기 싫을 때였습니다. 아니면, 그럭저럭 공부를 해내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수레바큇살에 끼여 끼걱끼걱 끌려다니는 때였습니다.
못난 중학생이었을 따름인 나는 힘들 때면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수레바큇살을 붙잡고 어떻게든 목적지까지 당도해서, 적어도 당신처럼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신은 죽은 지 한참 되어서인지 내가 뭐라고 생각하든 가타부타 말이 없었지요.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당신을 건져 내서 새 옷으로 갈아입힌 뒤에 마음으로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추모의 뜻이라기보다는 이기심이었지요. 나는 꿈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 꿈을 이룰 때까지 마음 속에서 당신이 끝까지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바퀴에 깔려 비참하게 죽어버린 한스가 아니라 걸핏하면 쓰러지려는 나를 잡아주고 이끌어 준 한스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나 안부를 전합니다. 그때 당신의 위로와 하일너의 가르침이 있었던 덕분에 나는 어떻게든 낙오되지 않았습니다. 바큇살에 매달려 한참을 달린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목적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우리는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영면으로 떠나보내고 싶었습니다.
한참이나 후에 이렇게 당신을 또 불러내는 것은 저간의 사정이 더 나빠졌음을 알리고 한번 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돌아간 이후로 우리의 사회는 더 크고 무거워졌으며, 복잡한 기계 부속품들로 채워진 수레바퀴로 대체 되었습니다. 그리고 멈추지 않습니다. 수레바퀴 안에서 우리들은 바퀴의 부속품이 되거나, 수레바퀴 밖으로 떨어져나가 밟히는 두 가지의 선택지만을 갖고 있습니다.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자들에게 떨어져나간 무리는 그저 부적응자일 뿐입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나의 부속품으로 기능하며 버텨내고 있습니다. 수레에는 점점 더 많은 짐이 실립니다. 그리고 내구성이 다한 부속품들은 가차 없이 버려집니다. 나는 지금도 낙오될까 봐 무섭습니다. 이제낙오된다는 것은 학교를 다닐 때보다 더 무서운 의미로서, 경제적으로 도태되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의 안위가 몽땅내버려지는 일입니다.
밤중에 홀로 부엌 테이블에 앉아 당신께 편지를 쓰고 있노라니 멀리서 수레바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힘겹고 고단한가? 너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겪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이다. 목표를 정했다면 선례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아프고 고된 건 탈피를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능동적 선택이다. 목표를 수립했으면 몰두해라. 침식을 잊고 몰두해라. 수레바퀴가 널 깔아뭉개려 한다구? 천만에. 수레바퀴는 너희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고 있다. 수레바퀴에 맞서려 하지 마라. 수레바퀴의 속도에 너의 속도를 맞춰라.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
나는 두렵습니다. 자신보다도 20대와 10대의 어린 친구들과 이제 막 5살이 된 딸이 더 걱정됩니다. 그들을 굴려가는 수레바퀴가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성경이나 복음서의 내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진리를 찾는 공부보다는 본문을 외우고 문장의 문법형을 알아내는 양적인 공부를 했듯이, 우리의 학생들은 여전히 진리에 대한 탐구나 호기심을 거세 당한 채 닭장 안의 닭들처럼 그저 본문을 외우고 문형을 분석하고 있을 뿐입니다. 바뀐 것은 소속된 학생들의 이름과 세련된 교실 환경일 뿐입니다.
그들이 어두운 인생의 터널을 지나감에 있어 누구도 그들의 안위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주변인들은 언제나 그들의 성적에 대해서만 걱정합니다. 수레바퀴에서 굴러 떨어지고 나면 패배자로 취급할 뿐, 그 사람이 피로를 풀고 힘을 축적하도록 돕고 갈 길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어른은 지극히 드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일너가 당신에게 그랬듯이 나는 그들에게 시를 읽고 쓰는 법, 사물이나 현상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지혜 같은 것들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보이기 위한 공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공부에서 탈피하고 좁은 사고와 관점의 한계에서 벗어나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인생이 당신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게끔 하고 싶습니다.
과거에공부의 성취로 일군 행복은 순간이었지만, 까까머리 시절당신을 만난 기억은 아직까지 내 마음 한켠에 보물처럼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런 보물들을 차곡차곡 간추려 내 딸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 애가 수레바퀴의 속도를 따라가다 지쳐 쓰러지려 할 때, 한번씩 꺼내봄으로써 힘을 낼 수 있게요.
그때나 지금이나못난 이야기만 실컷 늘어놓습니다. 어쩌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더 그리워집니다. 조만간 본가에서 책을 가져와, 당신이 잠든 자리를 한번 더 쓸어보고 싶습니다.비명碑銘을 오랫동안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딸의 손을 잡고 함께 찾아갈 날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