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 셔플 ( Harlem Shuffle ) - 번역가의 역할은?
책보다는 책의 번역에 대해서 할 말이 더 많은 책이다. 읽는 내내 세일즈 능력 제로인 번역가의 글을 읽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이걸 감내하고 끝까지 읽어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거지 같은 번역으로 나온 책에 대한 올바른 처벌은 무엇일까?
주로 이용하는 대형 서점 3곳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서적이라고 동시 추천을 받아 사두고 묵혀두다가 읽기 시작한 할렘 셔플. 작가의 전작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던 터라 두꺼운 책임에도 호다닥 읽힌 것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첫 챕터에서부터도 난항을 겪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1960년 미국의 할렘가에 인물들이 낯설어서 속도가 붙지 않나 했는데, 읽을수록 잘 안 들어오는 어색한 문장들 때문에, 책을 읽다가 수십 번이나 번역가의 이름을 다시 찾아보고, 작가의 전작들을 동일한 작가가 번역했는지 확인을 했다.
( 동일한 작가가 번역했다면 이 작가의 전작들은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
등장인물들과 지명이 훨씬 더 낯설고 분량도 이에 비해 훨씬 많은 밀레니엄 시리즈도 이렇게까지 헤매지는 않았는데, 책이 안 읽히는 걸 보면 출판사에서 번역만 맡겨놓고 검수를 제대로 안 한 모양이다. 책을 읽은 사람들 몇몇이 동일한 부분을 지적하는 걸 보면 나의 문해력만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책을 읽다 읽다 번역 때문에 환불을 요청하고 싶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 번역이 조금 어색하고나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원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으나, 이렇게 엉망이어서 화가 난 적은 처음이다. 혼자 고루하게 잘난척할 번역이면 혼자 놀아야지, 남의 책 판매량에 영향을 끼쳐야 하나? )
예를 들면 P. 426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우스 페리부터 밴 코틀랜드 242번가 사이의 IRT 라인 22킬로미터를 그 영역으로 선언하는 3시 6분 사우스 페리라 오후 3시 36분에 50번가 역에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헤럴드 스퀘어의 선로에 뭔가 움직이는 형체가 있다는 신호수의 보고로 지연되었다.
아니 도대체 이 문장을 뭐라고 이해해야 하는 건지 참 당황스러웠다. 업(業)의 일부로 통역/번역을 하는 사람이라, 잘 모르는 분야, 생경한 단어를 맞이할 때면 로봇처럼 사전 속 단어를 뚝뚝 내뱉는 내 모습을 잘 알기에, 일정 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으나,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쓴 7시간이 아까워서 ( 이 시간이면 소설책 2권은 읽을 시간인데!!! ) 책의 발 번역에 대한 불만을 길게 글로 남긴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차별받는 흑인들이 이룬 흑인 사회에서에서도 계층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며, 지역에 따른 편차가 동시대에 존재하며, 서로 다른 지역의 흑인들이 너무나도 큰 차이의 생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조금 놀라웠다. 주인공이 여타 흑인에 비해 더 어두운 피부색을 가지고 있어서, 뒤마 클럽 ( 소설 속 흑인 엘리트들의 사교 모임 ) 에도 가입하기 힘든 조건이었으며, 같은 흑인임에도 주인공의 부모는 그가 충분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아, 대놓고 돌려 까기를 시전 한다. ( 이런 점은 동서양 인종을 막론하나 보다. )
첫 번째 장에선 프레디가 카니의 이름을 팔거나 멋대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평온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프레디 이 자식 양아치-라고 욕을 했지만, 듀크에게 복수를 하는 두 번째 장에서의 카니를 보면, 사람이 참 자석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몸에 서로 반대인 N/S극을 지닌 채 N극으로 갈 때엔 다른 N극을 밀어내고 S극을 끌어당겼다가, 또 다른 내 안의 자아 S극이 일어나면 그전과는 반대로 N을 당기고 S극을 밀어내는. 우리네도 이와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서로 상반되는 성질을 둘 다 지니고 있으면서, 하루는 좀 더 N극이었다가 하루는 좀 더 S극이었다가.
N극과 S극을 오가는 카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붉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끝까지 사촌 프레디는 얄밉지만, 반대로 조금만 머리를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 아쉽기도 했다. 뉴욕의 거대한 힘을 가진 집안의 백인 친구를 두고, 친구 찬스 하나 제대로 못 써먹은 얼간이 같아서. 카니에게 ‘내 절친 완전 금수저!!! , 얘랑 친하게 지내서 같이 부자 되자’라고만 언질을 했어도, 인생 초고속 엘리베이터까지는 몰라도 에스컬레이터 타면서 높이높이 올라갔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너무 21세기 자본주의적 마인드인가. )
덧.
번역가들도 작가이자 세일즈맨이라는 생각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원서 단어가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라면, 다른 단어들로 더 쉽게 편하게 읽히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읽히던지 말던지는 내일은 번역뿐이라는 태도라며, 이 번역가가 번역한 글은 절대 읽지 않을 것이다. 읽히지도 않을 글을 팔리기를 바라는 건 원서 작가와 출판사와 그리고 내 돈 내산을 할 독자들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출판사에서 번역료를 더할 나위 없이 짜게 줘서 엿 먹어봐라 이런 거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