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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운 Feb 03. 2020

엄마, 나 성공했어!

그 녀석들과의 동거

출처, Vasily Koloda, unsplash

4년간의 기숙사 생활, 그리고  자취

나의 첫 자취는 24살 봄을 기다리는 2월 끝무렵 발령을 받고 시작되었다. 대학생 신분일 땐 기숙사에 만족하며 잘 지냈다. 먼 곳에 계시는 부모님이 걱정을 더실 수 있고, 먹는 것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내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학식을 먹으며 식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자취에 대한 선망이 존재했다. 자취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하게 될 운명이니 더 빨리 하려곤 하지 않았다.




 네가 처음이야

<403호>는 나의 첫 자취방이다. 첫사랑이라고나 할까? 사랑은 선택할 순 없지만, 꽂히면 그 한 가지만 보고 달려간다. 특히 첫사랑은. 비슷하다. 무조건 역 주변으로 골랐다.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나에게 가장 좋은 출퇴근 수단이 전철이다. 근무환경에 적응하기에도 바쁠 텐데 출퇴근이라도 쉽고 편하게 하자는 의미에서 그 유명한 역세권 매물을 찾았다. 그렇게 아담하지만 신축건물이라 깔끔했던 <403호>와의 동거는 함께하는 모든 것이 처음이자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이젠 다른  보이기 시작해

출퇴근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집에 산다는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몸과 마음이 못해도 두배쯤은 더 고생했을 것이다. 반년 정도 흘렀을까. <403호> 이 녀석과 동거는 생각과 조금 달랐다. 익숙해진 연애를 하다 보면 문득 드는 딴생각처럼. 나는 분명 월급을 받고 있는데 돈이 잘 모이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작고 소중한 나의 월급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다. 역과 가까운 것도 중요하지만 월세로 나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년의 계약 만료기간을 1-2달 앞둔 시점에서 나의 생활방식을 돌아보았다.

1) 평일엔 운동을 제외하고는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2) 밥도 사 먹기 보단 집에서 먹는 것을 선호한다

3)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역주변이 좋겠다


물론 0순위는 월세를 줄이는 것이었다. 역 주변 집주인들은 거의 전세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월세를 찾아봤다. 고민한 결과를 정리해보니, 음식점이나 유흥거리를 즐겨 찾지 않기 때문에 지금 보다 월세를 아낄 수 있으면서, 최대한 역 주변에서 운동하러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집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고기도 한번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1년 자취해봤다고 나에게 맞는 집을 고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405호>는 처음 집보다 조금 낡고 살짝 외진 곳에 있지만 내가 생각했던 조건을 모두 갖추고, 크기도 조금 컸다.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집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가 나의 재무상태를 확인하고 경제에 관심을 갖게 해 준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 녀석과 함께하게 된 덕분에 세상에 눈을 뜨고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만족할  없어

오늘로 2일 째인 <1001호>를 만나게 된 건 단순히 월세를 전세로 바꿔 조금이라도 더 아껴보다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싶었다. 평일엔 거의 집에 있다 보니 집이 나의 생활이자, 삶의 질이 되었다. 분명 나는 이 집에 살고 있지만, 언젠간 여기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효율적이게 그리고 대강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집안에서 내가 도태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살아볼까?



조금 힘들긴 했어 아니 쉽지 않았지

<1001호>와 만나기 위해서 정말 머리 아픈 일을 많이 겪었다. 대출상품 고르기, 은행 방문, 부동산과 연락하기, 이사업체 고르기, <405호>와의 정산, 안전한 전셋집 공부하기 등등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해결이 안 된 일이 있다. 그런데도 말이다. 이삿짐을 풀고 집을 정리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단순히 집이 커져서? 아니다. 더 있다.



그녀의 속마음

나는 대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교사가 되면 부모님의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육아가 돈으로만 이루어지진 않지만 지난 20년간 나에게 쏟아부으신 돈과 정성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알기에 앞으론 부모님이 더 즐기고, 행복할 수 있는 곳에 돈을 사용하셨으면 했다.

이 다짐은 쉽게 지켜지지 못했다. <403호>와 <405호>를 만날 때도 모아둔 돈이 없어 도움을 받고, 월세도 지원받아 냈었다. 나의 상황은 여유롭지만 나 스스로의 약속을 생각하면 마음은 불편했다.


‘내 힘으로 해낸 독립’

이번에는 정말 내가 모은 돈으로 내 능력으로 전셋집을 구했다. 집도, 목표도 성공이다.

출처, Breno Assis, unsplash

<1001> 함께라면

-집안에서 공간 분리가 잘되어서 정리가 잘 된다.

-자꾸 움직이게 되어서 활동성이 높아진다.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고, 자기만족 높다.

-앞으로 더 잘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함께 성장하는 연애를 하게 되었다.


엄마 나 성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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