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들과의 동거
나의 첫 자취는 24살 봄을 기다리는 2월 끝무렵 발령을 받고 시작되었다. 대학생 신분일 땐 기숙사에 만족하며 잘 지냈다. 먼 곳에 계시는 부모님이 걱정을 더실 수 있고, 먹는 것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내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학식을 먹으며 식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자취에 대한 선망이 존재했다. 자취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하게 될 운명이니 더 빨리 하려곤 하지 않았다.
<403호>는 나의 첫 자취방이다. 첫사랑이라고나 할까? 사랑은 선택할 순 없지만, 꽂히면 그 한 가지만 보고 달려간다. 특히 첫사랑은. 비슷하다. 무조건 역 주변으로 골랐다.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나에게 가장 좋은 출퇴근 수단이 전철이다. 근무환경에 적응하기에도 바쁠 텐데 출퇴근이라도 쉽고 편하게 하자는 의미에서 그 유명한 역세권 매물을 찾았다. 그렇게 아담하지만 신축건물이라 깔끔했던 <403호>와의 동거는 함께하는 모든 것이 처음이자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집에 산다는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몸과 마음이 못해도 두배쯤은 더 고생했을 것이다. 반년 정도 흘렀을까. <403호> 이 녀석과 동거는 생각과 조금 달랐다. 익숙해진 연애를 하다 보면 문득 드는 딴생각처럼. 나는 분명 월급을 받고 있는데 돈이 잘 모이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작고 소중한 나의 월급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다. 역과 가까운 것도 중요하지만 월세로 나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년의 계약 만료기간을 1-2달 앞둔 시점에서 나의 생활방식을 돌아보았다.
1) 평일엔 운동을 제외하고는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2) 밥도 사 먹기 보단 집에서 먹는 것을 선호한다
3)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역주변이 좋겠다
물론 0순위는 월세를 줄이는 것이었다. 역 주변 집주인들은 거의 전세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월세를 찾아봤다. 고민한 결과를 정리해보니, 음식점이나 유흥거리를 즐겨 찾지 않기 때문에 지금 보다 월세를 아낄 수 있으면서, 최대한 역 주변에서 운동하러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집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고기도 한번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1년 자취해봤다고 나에게 맞는 집을 고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405호>는 처음 집보다 조금 낡고 살짝 외진 곳에 있지만 내가 생각했던 조건을 모두 갖추고, 크기도 조금 컸다.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집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가 나의 재무상태를 확인하고 경제에 관심을 갖게 해 준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 녀석과 함께하게 된 덕분에 세상에 눈을 뜨고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오늘로 2일 째인 <1001호>를 만나게 된 건 단순히 월세를 전세로 바꿔 조금이라도 더 아껴보다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싶었다. 평일엔 거의 집에 있다 보니 집이 나의 생활이자, 삶의 질이 되었다. 분명 나는 이 집에 살고 있지만, 언젠간 여기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효율적이게 그리고 대강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집안에서 내가 도태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살아볼까?
<1001호>와 만나기 위해서 정말 머리 아픈 일을 많이 겪었다. 대출상품 고르기, 은행 방문, 부동산과 연락하기, 이사업체 고르기, <405호>와의 정산, 안전한 전셋집 공부하기 등등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해결이 안 된 일이 있다. 그런데도 말이다. 이삿짐을 풀고 집을 정리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단순히 집이 커져서? 아니다. 더 있다.
나는 대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교사가 되면 부모님의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육아가 돈으로만 이루어지진 않지만 지난 20년간 나에게 쏟아부으신 돈과 정성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알기에 앞으론 부모님이 더 즐기고, 행복할 수 있는 곳에 돈을 사용하셨으면 했다.
이 다짐은 쉽게 지켜지지 못했다. <403호>와 <405호>를 만날 때도 모아둔 돈이 없어 도움을 받고, 월세도 지원받아 냈었다. 나의 상황은 여유롭지만 나 스스로의 약속을 생각하면 마음은 불편했다.
‘내 힘으로 해낸 독립’
이번에는 정말 내가 모은 돈으로 내 능력으로 전셋집을 구했다. 집도, 목표도 성공이다.
-집안에서 공간 분리가 잘되어서 정리가 잘 된다.
-자꾸 움직이게 되어서 활동성이 높아진다.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고, 자기만족 높다.
-앞으로 더 잘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함께 성장하는 연애를 하게 되었다.
엄마 나 성공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