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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운 Feb 14. 2020

요즘 초딩은 뭐하고 노나

우리 반 애들이 쉬는 시간에 노는 법

요즘 아이들은 뭐하고 놀까?

내가 학급 담임이 되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다. 정확히 말하면 요즘 애들은 교실에서 뭐하고 놀까. 뉴스를 통해 본 아이들의 세상은 우리 때와는 달라 보였다. 걱정이 많이 되었다. 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하여 갈등이 생기면 어쩌지.. 빠른 사회적 흐름이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준 것처럼 아이들의 생활에도 과거와 비교하면 큰 변화를 보일 거라고 예측했다. 나의 예측은 맞았을까?


내가 근무하는 곳은 꽤 큰 학교이지만 대도시의 중심에 있진 않다. 나의 경험으로 요즘 초등학생은 이렇다고 일반화시킬 순 없지만 적어도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일상엔 순수함이 많다.


우리 반 아이들이 노는 방법

우리 반엔 특별한 놀이터가 있다. 교실 뒤편에 있던 사물함을 옆으로 옮겨버리고, 앉아서 편히 놀 수 있도록 매트를 깔아 두었다. 어디든 놀이터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들은 교실과 운동장 할 것 없이 잘 눕고, 앉아버린다. 옷이 더러워지거나 가시, 뾰족한 것에 노출되기 쉬워서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다.

우리 반 뒷편 매트(사진상 짤렸지만 꽤나 넓다)


1. 보드 게임 및 카드 게임

학급의 반 이상이 한 번에 매트에 앉을 수 있다. 내가 판을 깔아준 건지 자연스럽게 두 명 세명 모여 보드게임을 하더라. 물론 매트가 없었어도 어디서든 앉아서 했을 거다. 루미큐브나 고 피시, 할리갈리, 카드게임 등을 많이 한다. 개수가 제한적이다 보니 독점하려고 맡아두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하고, 누구보다 먼저 게임도구를 차지하기 위해 뛰어가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2. 마피아, 홍삼 같은 맨손 놀이

보드게임과 카드게임은 최대 인원이 4명이다. 그러다 보니 한계가 있다. 인원 수가 너무 많아 보드게임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땐 모여서 마피아나 홍삼, 딸기 같은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은 게임을 한다. 내가 이름을 잘 모르는 놀이도 많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참여해서 논다는 건 소외되는 학생을 줄이고 어울릴 수 있기 때문에 장점이지만, 모이는 인원만큼 교실이 엄청 시끄러워지고 아이들이 과하게 흥분한다는 단점이 있다.

*말뚝박기나 햄버거처럼 몸을 사용해서 격하게 노는  절대 금지라 하지 않는다.


3. 공기, 구슬치기 등 전통놀이

쉬는 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앉게 되면, 가끔 놀다 온 매트에 뒷정리가 미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공기가 하나씩 매트에 놓여있을 때, '다음 쉬는 시간부터 이렇게 하나씩 빠져있으면 옆반에 공기를 선물해줘야겠다^^'라고 내가 혼잣말을 하게 되면 그다음부터 공기나 구슬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애들은 공기놀이를 좋아한다. 구슬치기도 마찬가지다.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살짝 변형해서 구슬치기를 한다. 나도 공기놀이를 하며 자랐는데 이런 걸 보면 세대가 공감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1,2,3 공통점

교실에 있는 놀이도구에 적응해서 논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나무 조각 하나를 줘도 잘 논다. 있는 것을 정말 잘 활용한다. 배워야 할 점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에게는 음악시간 준비물인 리코더가 총이 되기도 하고, 필통이 공이 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걱정은 점차 욕심으로 바뀌어갔다. 하나라도 더 재밌게 놀 수 있는 것을 준비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4. 이성친구 이야기하기, 이성친구와 이야기하기

학년이 높아지고 학기가 마무리될수록 애들은 모여서 이성친구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여학생들이 관심이 많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빨리 오는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내 생각보다 연예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남학생 한두 명, 여학생 한두 명 이렇게 숫자를 맞춰 자기들끼리 놀러 갈 계획을 짜기도 하고, 좋아하는 이성친구에 대해 상담을 하기도 한다.


5. 그림 그리기, 책 읽기, 종이접기 등 앉아서 하고 싶은 거 하기

30명이 다 되는 아이들 중에 성격과 인격이 똑같은 아이는 없다. 어떤 아이는 활발하게 게임하며 노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앉아서 친구들이 하는 걸 구경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또 어떤 아이는 오늘은 책을 읽고 싶어 하지만 내일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 쉬는 시간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다.


6. 운동장에 나가 축구하기

활동적이다 못해 에너지가 폭발하는 남학생들의 이야기다. 쉬는 시간이 되면, 틈만 나면 운동장에 나가도 되냐고 물어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흠뻑 빠진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다만 수업시간은 잘 지켜서 들어와야 한다.



내가 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내가 놀며 지낸 시대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 가지로 해석해봤다.


첫 번째는 시대를 관통하여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아우르는 놀이 방법이 존재하고 그것이 지켜진다.

우리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 이유다. 누구든 똑같이 어린 시절을 겪어내고, 그 어린 시절엔 모두가 공감할 만한 방법으로 유대를 다진다. 보드게임 종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삼삼오오 모여 앉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나름의 규칙 속에 그들만의 무언가를 나누는 것.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 보다.


두 번째는 놀이도구나 방법들이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쩌면 교육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상상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시대다. 혁신적으로 변하는 사회에서 바라는 인재상을 만들기 위해 우린 최선을 다해주고 있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그대로라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놀이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만의 놀이문화를 지켜주면서도 트렌드를 따르게 해줘야 한다. 어쩌면 트렌드를 만들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쉽지 않다. 해줘야 할 것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동안 너무 안일했나 싶기도 하다. 아이들이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면서 더 큰 그릇을 품도록 도와줘야 한다.




노는 모습만 단편적으로 보고
이 아이는 어떠하다고 단정 지으면 안 돼!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어떤 날은 하이텐션을 유지하다가 또 어떤 날은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스펀지 같아서 교사나 학부모가 '너는 어떤 아이야'라고 하면 정말 말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동해버린다.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핸드폰 게임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초등학교 시절과 가장 달라진 점일 것이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 허락 없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큰 변화다. 아침 등교 후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다가 종례만 하면 때는 이때다!! 하고 다 꺼낸다. 핸드폰 게임을 즐겨하는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 pc게임보다 핸드폰 게임이 더 좋다고 했다.


복도에 앉아서 방과 후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계단에 앉아 담임 선생님 눈을 피해

운동장 한쪽에서 학원차를 기다리며

친구를 기다리며 옆 반 문 앞에서


학칙이나 교사의 재량에 따라 핸드폰 사용이 관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다가, 종례 후 핸드폰을 꺼내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핸드폰 게임으로 친구를 사귀고, 친구를 처음 사귈  꺼낼  있는 공통점과 관심사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문화이자 언어인 것이다. 무작정 '눈이 나빠지니 하지 말아라', '나쁜 거니 그만해라'라고 하면, 그들에겐 극단적으로 들린다. 말을 하지 말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게임으로 인해 걱정과 갈등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적정한 선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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