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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운 Feb 13. 2020

도전이 두려운 교사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

나와는 다른 삶을 살기 바라며

내 선택의 기준

언젠가부터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싫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낭비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내가 결과를 낼 수 있는가'를 두고 저울질했다. 그런 나의 선택이 쿨한 거라고 믿었다. 정말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안될 것 같은 일엔 돌아보지 않고 포기하기
내 선택의 기준 그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아픔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작은 내가 있다.
껍질이 갈라지고 메말라지는 것이 두려워 나를 가장 키울 수 있는 햇빛을 멀리하는, 늘 깜깜한 암흑 속에만 가지를 뻗는 그런 나무처럼 말이다. 더 자랄 수 있는 나의 잠재력보다 당장 상처 받는 게 문제였다. 더 무섭고 두려웠다.
이런 나의 생각에 오류가 있을 거라는 걸 몰랐다.




그런 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생겼다.


교육대학교 4학년 재학 시절 한 달간 이뤄졌던 실습에서 만나 나에게 교사로서 자질과 학교 생활에 많은 영감을 주신 선생님이 계신다. 임용고시 공부한다고 학교현장을 잊고 지내다가 아이들을 만나니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김가운 선생님,
부모가 자식을 선택하지 않듯이
교사도 학생을 선택하지 않아요.


그렇다.

우리가 만나게 된 건 운명이고, 사랑일 뿐이다.

떨리는 나를 다독여주는 학생들을 보고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나도 자식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더라.


자식이 생긴 기분이 이런 건가?

내가 낳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예쁘다면,

정말 낳으면 도대체 어떤 기분인 거지?



좋아. 내 새끼들.

내 자식이 생긴다면 대부분의 부모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나의 장점은 살려서 가르치되, 나의 단점까지 닮게 하지 않아야지. 학생들을 하교시킨 후 혼자 교실에 남아 나에게 부족한 부분, 아이들이 닮지 않았으면 하는 점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 반 아이가

선생님, 실패할  같아서 도전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한다면

그래. 하지 말자. 그렇게 하는  좋겠어.

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의 오류를 여기서 발견했다.

실패할 것 같아서 -> 일어나지 않은 일
화자의 추측과 생각일 뿐 실제로 벌어진 게 아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나의 미래라고 판단하고 멈춰버린 것.


난 이렇게 대답하겠지.

아직 모르는  아니야? 성공할  있을 거야. 한번 해보자. 어려운  있으면 선생님이 도와줄게.

  있는 힘을 다해 최선을  해보고도 실패한다면 그건 괜찮은 거야.





 자식들인데,

되든 안되든 끝까지 부딪혀 보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쭉쭉 자라서 튼튼하게 크자!


내가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 배경에는

수년 전과는 달라진 학교의 분위기도 한 몫했다.

학생들의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경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다칠까 봐 보호하는 장벽이 커졌다고 할까. 학생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장치가 많다. 눈에 띄게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사라진 건 물론이거니와 체육대회에서도, 학교 내 대회에서도 대결구도는 최소화시키고 경쟁보단 모두가 참여하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

경쟁이 곧 도전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과의 경쟁은
곧 자신과의 싸움이 되고, 도전이 된다.

물론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 크다. 과한 경쟁은 학생들이 일찍부터 패배감에 젖어 낮은 자존감을 형성할 수도 있고, 의욕을 상실할 수 있다. 특정한 학생들에게 유리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안 된다. 자신감을 얻고 파릇파릇하고 건강하게 자랄 아이들이 슬퍼하는 건 나도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깨져버릴 아주 얇은 유리처럼 과하게 보호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하다. 선별적으로 도전과 그에 따른 경쟁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부모와 교사가 학생들을 외부의 어떤 역경과 고난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지만 평생 그럴 수 있을까?

아이들이 앞으로 부모와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하라는 일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언젠간 아이들은 우리의 품을 벗어나게 될 것이고, 선택을 하게 되며 그 결과에 따라 살게 된다. 때론 잘못된 선택에 후회를 하기도 하고, 아파하겠지만.

그 또한 거름이 되리라.


진짜 좋아하는 , 해보고 싶은 거 해볼  있는 데까지 한번 해보라고 할 거다. 미친 듯이 열심히 해보고, 죽어라 노력해서 나온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본인의 것으로 만들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내가 하지 못하는 도전을 쉽게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학생마다 개인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강요는 하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서 나처럼 도전이 두려우면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와 교사라는 든든한 지원군 안에 있으니까 실패를 너무 겁내지 말았으면 한다.



아. 너무 거창하게 말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작든 크든 스스로 목표를 정해 되든 안되든 끝까지 해보는 것.


*좋은 성과를 내면

자신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고 뿌듯함과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갖고 성장하는 그런 아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도전에 스스로 박수를 칠 줄 알며, 회복탄력성을 길러 결과에 승복하고 단단해지는 그런 아이


올해는 조금 더 계획적으로 해나갈 볼 생각이다.

작년까지는 계획적이진 못했다. 기회가 생기면 때에 따라 조금씩 했을 뿐이다.


학기, 학년 동안 기록하고 도전한 결과를 브런치에 다시 올릴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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